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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Sep 07. 2024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에필로그


  저출산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을 왜 이렇게까지 꺼리게 되었을까요? 저는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회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도 아닙니다. 다만 영유아를 돌보고 교육하며, 특히 인간의 정서에 대해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출산을 불러온 많은 이유 중 하나에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정서를 나누는 것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문제도 있지 않을까? 서로 관계를 맺고 얽히고 얽혀 살아가는 것이 싫어서는 아닐까? 그로 인해 동물이나 식물 등을 돌보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정서만 사용하며 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유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사회 현상 앞에서 우리는 정부의 정책만 믿고 있을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해보아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교육을 이끄는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부모와 자녀가 정서를 잘 표현하고 나누는 것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녀의 행동 이면에 그려져 있는 정서를 보지 못하고 힘겹게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에게 아이의 정서를 어루만지고 부모 자신의 정서도 인정하는 방법을 안내해 왔습니다. 이 책은 '긍정적 지지어'를 중심으로 저의 육아 에피소드를 정리한 것입니다. 여기에 소개된 사례들은 대부분 수년간 부모교육을 강의하며 언급한 것들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네가 최고야, 엄마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일까요? 이 말도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힘을 주지만, 아이들은 이와 더불어 자신의 성장을 지지받고 싶어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 아래에서 안전하게 머무는 것보다 힘이 들고 위험이 따르지만 독립하고 성장하기를 더 원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발달의 단계마다 들려줘야 하는 말이 '긍정적 지지어(affirmation)'입니다.


  경상도 여자인 제가 '긍정적 지지어(affirmation)'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도 낯설고 부끄러웠습니다. 심지어 '우리 문화랑은 완전 안 맞는 거 아냐?'하고 잠시 깎아내려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긍정적 지지어가 시대와 문화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옳다는 것을 믿습니다. 각 단계마다 안내한 긍정적 지지어를 말 그대로만 인식하지 말고, 그 안에 담겨있는 허가와 사랑을 마음으로 해석해 보세요. 그리고 몸으로, 말로, 표정으로, 글로 표현해 주세요. 아이는 바로 그 허가와 사랑의 표현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마음은 있는데 표현을 못할 뿐이야."라고 자신을 두둔하지 마세요. 표현하지 않아도 척척 느끼고 알아차리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은 연습하고 훈련하여 갖추는 기술이고 표현의 방법입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뜻한 사랑의 표현은 자녀를 친절하게 돌보는 행동으로 보이고, 엄한 사랑의 표현은 일관되게 규칙을 알려주는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발달 단계에 따른 긍정적 지지어를 잘 활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 제시된 발달 단계는 정확하게 우리 자녀에게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시기 아이들의 발달은 개별차가 크므로 일반적인 기준을 안내하기 위해 제시된 월령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종종 "이 교육을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미 아이가 다 커버려서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을 만나곤 합니다. 하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더 많이 들어야 하는 긍정적 지지어가 있다면 나이를 떠나 다시 충분히 들려주세요. 그 시기에 여러 이유로 허가하지 못했던 행동과 감정들을 지금이라도 충분히 경험하게 해 주고 표현하게 해 주세요. 부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발달 단계가 있었다면, 바로 그 단계가 부모에게는 발달 과업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고 지나왔던 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아이와 함께 행동하고 느끼고 표현하면서 자신을 다시 성장시켜 보세요. 우리 아이가 어느 단계의 발달을 충분히 성취하지 못하고 지나온 것 같다고 여겨지면 다시 그 단계에 들려줘야 할 긍정적 지지어를 지금이라도 충분히 들려주고 표현하면 됩니다. 부모 또한 자녀를 키우며 알아차리게 된 자신의 결핍이 있다면 그 단계에 들어야 할 긍정적 지지어를 지금이라도 스스로 들려주고 아이와 함께 행동하고 다시 성장하면 됩니다. 성장하고 변화하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습니다. 알아차리는 그 순간이 가장 적절한 순간이고 가장 빠른 순간입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육아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루어낸 성장도 없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고 우리는 언제든 다시 메꿔가며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수선이 필요하다. 우리가 인생의 초기에 필요로 했던 교류분석 행복 메시지들은 그런 수선을 도와준다. 진짜 도로가 정기적이고 진지한 유지보수를 필요로 하듯이 우리들 역시 정기적 보수가 필요하며, 또한 우리가 인생에서 어려움을 경험할 때 신중하고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 인생길을 잘 유지 보수할 때, 우리는 우리의 자율성을 유지한다.
 
-Tomoko Abe, 교육적 교류분석 p.365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아이의 태내기와 신생아기에 제 자신의 결핍과 마주할 수 있었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저의 결핍을 메꿔나갔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정체성과 힘을 알아가는 매 순간이 힘들었지만 아이와 함께 저지르고 해결하고 표현하면서 다시 성장했습니다. 내년이면 아이는 여섯 돌이 되고 이 책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은 다음 발달 단계인 구조화 단계에 접어들 것입니다. 저는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규칙을 따르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이 단계가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모델링을 보여야 하고 책임 있게 발달을 지원해 주어야 할 텐데, 제가 부족한 부분이 규칙을 지키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보니 과연 이 시기의 부모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저의 발목을 잡던 약점들을 이 단계의 아이를 키워내며 드디어 극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니 기쁘기까지 합니다. 아이와 저는 서로에게 트레이너가 되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_1'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속편에 대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_1'은 저희 부부가 아이를 임식하고 출산하여 다섯 돌 반까지 키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교류분석의 이론을 녹여 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_2'는 저희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무렵 세상에 내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13년 정도가 걸릴 것 같네요. 그 긴 시간 동안 저희 부부는 또 어떠한 성장을 하게 될까요? 아이라는 귀한 스승을 얻은 덕분에 계획에 없었던 성장을 덤으로 하고 있는 저희에게는 고된 육아의 시간들이 기꺼이 지불할 만한 기회비용으로 여겨집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를 거창하게 사회적 의미를 담아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와 반대의 성격을 가진 이성에게 끌려 결혼을 하고 아웅다웅 살다 보니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를 낳아 옥신각신 키워내고 나니 이제는 나 자신마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우리가 한 번 살다 가는 이 인생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이번 생은 아직 틀리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맞고 틀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워보세요. 내가 보이고,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과 함께 부모를 성장시키고 때가 되면 부모 곁을 떠날 테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토록 바라던  만의 시간을 보낼  있습니다. 남과 남으로 만난 우리 부부가 가장 힘겹게 협력하고 버텨낸 시간들이 육아의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힘든 시간을 함께한 추억으로 남은 평생도 의지하며 살라고 잠시 우리 부부 사이에 다녀가는 고마운 존재가 바로 아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부부 관계가 나빠도 아이 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 남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있으며, 언제든 마음을 먹으면 변화할  있는 존재입니다. 아이 핑계를 대서라도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세요. 속수무책으로 감정에 휩싸여 서로에게 상처 주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해 보세요. 아이 덕분에 우리는  삶의 주인이   있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살아볼  있게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한 번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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