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용한 성장
새 도시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학교에 들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입학이었다. 첫 학교가 국제학교라니.
1학년은 한국인이 적어 각 반에 한 명씩 배정되었다. 안 그래도 내성적인 아이였다. 한국 유치원에서도 적응에 시간이 필요했던 아이가, 언어도 통하지 않는 교실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 아이는 8개월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질문에는
“Yes” 대신 엄지손가락을 올렸고,
“No” 대신 아래로 내렸다.
몇 가지 손동작을 약속처럼 정해두고 세상과 소통했다.
방과 후 수업에서는 의사소통의 오해로 셔틀버스를 놓친 적도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몇 차례 상담을 요청했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느 날 상담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울었다. 아이를 위해 애써주는 선생님의 진심이 고마웠고, 동시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미안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최고의 선생님을 만난 셈이었다.
다행히 아이를 좋아해 주는 친구도 생겼다. 그 친구는 자연스럽게 작은 통역자가 되었고, 아이는 그 곁에서 조금씩 숨을 돌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버팀목이었다.
국제학교에서 언어 적응이 늦는 아이들은 대체로 세 단계를 거친다.
관찰기.
침묵기.
그리고 폭발기.
우리 아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긴 관찰기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로서 그 시간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신 말해주고 싶었고, 대신 설명해주고 싶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조급함은 커졌다. 집에서는 누구보다 수다스럽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고, 하루의 일을 쏟아내던 아이가 교실에서는 거의 한 해 가까이 침묵했다.
그 간극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속으로 삼켰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알겠다.
관찰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아이는 그 시간 동안 교실의 규칙을 익히고,
친구들의 표정을 읽고,
자신의 안전을 계산한다.
말하지 않는 시간은, 어쩌면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우리는 왜 말을 빨리 시작하는 아이를 더 잘 적응한 아이라고 생각할까.
침묵은 정말 실패일까.
아이는 느리게 갔다. 하지만 느리다는 것은 뒤처진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저 자기의 속도로 걷고 있었을 뿐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앞서 끌어당기는 일이 아니라, 그 속도를 허락해 주는 일이라는 걸 나는 그때 처음 배웠다.
우리는 침묵을 실패로 오해한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는 그 시간 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