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진단서의 날짜
1화. 사망진단서의 날짜
“죽음을 기록하는 것은 신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험사의 일이다.”
2098년, 서울 도심.
그날 새벽, 그는 또 한 번 죽음과 시간을 동시에 마주했다.
매번 같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날은 실제가 되었다.
새벽 3시, 금속 냄새가 공기를 눌렀다.
응급실의 모니터가 희미한 푸른빛으로 심장 리듬을 그렸다.
“에피네프린, 일 밀리.”
류도현은 무표정하게 주사기를 눌렀다.
환자의 가슴이 미세하게 들썩였지만, 곧 평평한 선이 화면 위를 길게 그었다.
“심정지 확인.”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듯 건조했다. 간호사가 고개를 숙이자, 도현은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고 차트를 닫았다.
모든 기계가 멈췄는데, 소음만 남았다. 산소통 밸브가 새는 소리, 냉각기의 윙윙거림,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알람음.
그는 환자의 눈꺼풀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죽음은 조용하군.”
그 말은 위로도, 감정도 아니었다. 단지 관찰자의 기록처럼.
잠시 후, 기계가 환자의 생체 로그를 자동 저장했다는 알림을 띄웠다.
‘데이터 업로드 완료. 02:57:43.’
이제 이 환자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 있는 사망자’가 된다.
도현은 손끝의 라텍스 장갑을 벗으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새벽 공기 속에서 도시의 불빛이 점처럼 깜빡였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누군가 이 데이터를 복원한다면, 이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 물음이 스스로의 마음을 찔렀다.
의사였던 그는, 언제부턴가 생명을 ‘복원 가능한 데이터’로 보기 시작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빛줄기 사이로, 광고용 홀로그램이 서서히 펼쳐졌다.
“당신의 사랑, 단 3시간 전으로 되돌리세요.”
여자의 미소가 유리벽 위로 겹쳐졌다. 손에는 심전도 모양의 반지가 빛났다.
의료진 몇 명이 발걸음을 멈췄다.
“요즘은 장례보다 복원이 빠르다지?”
“보험료만 내면, 슬픔도 리셋이지.”
그들의 웃음은 피곤에 젖어 있었고, 도현은 아무 말 없이 지나쳤다.
홀로그램 속 남자가 덧붙였다.
“시간복원보험, 정부 인증 제도입니다. 가족의 마지막 3시간을 지켜드립니다.”
그 문장은 마치 기도문처럼 천천히 반복되었다.
벽면의 반사광이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덮었다.
잠시 멈춰 선 도현은 화면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죽음을 되돌리는 게 사랑이라면, 그건 몇 번째 사랑이지?”
홀로그램의 인공 하늘은 새벽빛보다 더 밝았다.
누군가 광고의 재생을 중단시켰다. 빛이 꺼지자, 복도는 다시 병원 냄새로 가득 찼다.
도현은 주머니 속 진동을 느꼈다 — 알림 메시지 한 줄.
‘시간복원 청구권 만기: 5시간 남음.’
그의 눈에, 광고보다 더 냉정한 숫자들이 떠올랐다.
남은 시간은 5시간.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죽음 하나.
집무실 조명은 낮게 깔려 있었다.
모니터 속에 표시된 파일명은 단순했다 — 사망기록서_윤세아_2098-04-13.
화면 한쪽엔 아이의 이름도 있었다. 류민서, 7세.
그는 커서를 움직이려다 멈췄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얀 문서가 열리고, 규격화된 문장들이 정렬되었다.
‘심정지. 복원 불가. 사망 시각 18:47:09.’
모든 게 숫자였다. 슬픔도, 사랑도, 이젠 시간 단위로 계산된다.
그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데이터의 공백이군.”
그 말은 감정이 아니라 진단이었다. 오랫동안 의사로 일하며 그는 통계로 생을 봤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통계가 너무 정확해서 잔인했다.
화면 구석에는 작은 버튼이 깜빡였다. 복원 가능 여부 조회.
도현은 눌렀다.
‘청구권 유효. 남은 시간 04:31:22.’
그 시간은 가족을 되돌릴 수 있는 한정된 여유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남은 유예였다.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규칙을 잃은 리듬으로 흘렀다.
그는 아내의 사진을 열었다.
아이와 함께 웃는 모습.
그 순간에도 웃음 뒤에는 언제나 타임스탬프가 있었다. 캡처: 2097-12-31 21:10:55.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그의 속삭임이 빈 방에 울렸다.“이제 죽음을 관리하지.”
모니터에 뜬 창 하나가 조용히 깜빡였다.
시간복원 청구 진행 중…
데이터 검증 과정이 느리게 흘렀다. 서버의 팬이 돌며 바람처럼 낮은 소리를 냈다.
도현은 눈을 감았다. 심장박동이 화면의 로딩바와 같은 속도로 오르내렸다.
이건 단순한 행정 절차였다.
단 한 번의 승인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진행률 94%.
그는 손끝으로 마우스를 가볍게 두드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마음속 계산이 복잡해졌다.
— 가족의 복원.
— 윤리 규정 위반.
— 자격 박탈.
모두 숫자처럼 머릿속에 배열됐다.
진행률 100%.
화면이 멈췄다.
“복원 거부.”
잠시 정적.
그리고 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당신은 이미 복원된 인물입니다.”
문장이 두 번 반복되었다.
그는 숨을 멈추었다. 모니터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손끝의 온기가 빠져나갔다.
“무슨 말이지…”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 줄의 오류 메시지가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했다.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그는 화면을 다시 눌렀다. 같은 메시지가 반복됐다.
“당신은 이미 복원된 인물입니다.”
어딘가에서 기계음이 작게 울렸다.
삐—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순간,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기록이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복원되었다는 사실을.
컴퓨터가 멈춘 채, 사무실 안은 이상하게 고요했다.
도현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책상 위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두꺼운 용지, 붉은 도장, 그리고 검은 잉크로 인쇄된 글자.
‘사망진단서 — 발행인: 중앙보건국.’
손끝이 종이를 따라 움직였다. 문장은 규격적이었다.
이름: 류도현.
생년월일: 2059년 7월 14일.
사망 시각: 2098년 4월 13일 새벽 3시 02분.
그는 숨을 들이켰다. 숫자가 머릿속에서 둔하게 울렸다.
불과 몇 분 전, 자신이 시계를 보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새벽 3시 02분. 지금.
한순간 현실이 흐려졌다. 문서 위의 활자가 흔들리며 번졌다.
잉크가 녹아내리듯, 이름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는 종이를 움켜쥔 채, 입술을 떨며 속삭였다.
“…이게… 내 이름이라고?”
빛이 깜빡였다.
모니터가 저절로 켜지며 이전 로그가 재생되었다.
그가 환자의 사망을 선언하던 장면.
모니터 속 의사와 현실의 도현이 동시에 시선을 들었다.
둘 다 같은 사람, 같은 표정, 같은 시간.
밖에서는 응급차의 사이렌이 멀어졌다.
바람이 문틈을 스쳤고, 종이가 흔들렸다.
사망진단서의 가장 아래줄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서명: 류도현 (본인 확인 완료)
그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