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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수 보살 Oct 25. 2024

파도(波濤)

전지적 이윤아 시점 1



전지적 이윤아 시점

"반갑습니다. 올리브영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퇴근 후 집 근처 올리브영에 들렸다. 매장 안에 들어서자 직원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먼저 맞이해 준다. 저녁 타임 분주한 직원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볼 필요도 없이 눈앞에 이벤트 중인 1+1 복숭아 핸드크림을 빠르게 구매하고 나왔다.

"수도권 호우경보로 인해 금일 A박물관 운영을 부득이하게 중단합니다. 방문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출근했지만 여전한 장맛비에 박물관은 오픈 20분 전에 긴급 휴관이 결정됐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유리 씨의 음성이 담긴 안내 멘트가 박물관 곳곳에 널리 울려 퍼진다. 10분째 안내 데스크 앞에서 쇼핑백을 꼭 쥔 채로 서성거리는 나를 뒤늦게 알아본 유리 씨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아는 척을 한다.

"시키실 일 있으신가요?"

"아.. 아뇨, 어제 도와주셔서 감사해서요. 이거 별건 아니에요"

평소에도 크다고 느낀 유리 씨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 쇼핑백을 건네받은 유리 씨가 안에 담긴 내용물을 보곤 슬며시 웃는다. 그리곤 전혀 뜻밖의 말을 건넸다.

"학예사님 오늘 퇴근 후 약속 있으세요?"

"없습니다."

"잘됐네요. 퇴근 후에 술 한잔 해요. 제가 살게요."

이번엔 내 쪽에서 눈이 커져버렸다. 필요한 용건을 끝낸 유리 씨는 나와 더 마주하고 있을 생각이 없는지 다른 업무를 보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무방비로 서있다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긋 평소 표정을 지으며 팀 사무실에 복귀했다.

"여기 안주랑 하이볼이 맛있어요."

평소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유리 씨가 퇴근 후 자주 들린다는 시내 번화가 변두리에 자리한 선술집으로 안내했다. 원체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 데다 몇 년 만에 직장 동료와의 술자리가 불편해 집으로 귀가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고생을 했다. 자주 와본 게 거짓이 아닌 듯 유리 씨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주문을 척척했다.

"맛있는 건가요..?"

"이 집은 이 세트가 적당한 가격에 비해 알차고 맛도 좋아요"

맛집 전문가 포스로 말하는 그녀에게 수긍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을 마치고 나니 딱히  할 말이 없어 술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일본 분위가 가 즐비한 선술집 곳곳에는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아래>를 출력한 그림이 마구 잡이로 붙어 있었다.

"유리 씨, 호쿠사이 작품 좋아해요?"

"전 목판화는 잘 모르겠어요. 대신 일본 불상은 좋아해요."

불교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은 오랜만에 본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으레 결이 비슷하다 하는데 나는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방금 전까지 어색했던 기류가 사라지고 금세 친근감을 느끼는 버릇을 지녔다. 이게 나의 인생 불치병이다. 몇 마디 주고받은 대화에 손쉽게 풀린 마음이 전달됐을까 불안한 예감이 들자 먼저 나온 하이볼을 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하이볼은 목구멍에서 폭포의 속도로 쭉 내려 순식간에 뱃속 깊은 장기까지 하강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또 한 번 들이키다 보니 문득 처음 선술집을 갔던 날이 떠올랐다. 


 "여자 둘이 이런데 재미없지만, 여기 안주랑 하이볼 먹을 만 해."

이 주전 폭우 내리던 밤 기숙사에서 처음 불콰한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이렇게 마주 앉아 술을 마시게 될지 전혀 몰랐다. 원래 내 룸메이트는 3학년 간호학과 언니였는데 과제에 실습이 점점 늘어나며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혼자 방을 사용하는 풍요로움에 익숙해질 무렵 룸메이트언니는 친한 고등학교 후배가 자취방을 나와 동기들 집을 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래관 607호 방 열쇠를 넘겼던 것이다.

"나 이런 곳은 처음이야."

당시 20살 신입생이었던 나를 비롯해 고만고만한 동기들은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을 조깨거나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봉구비어나 세계 맥주 창고 등 저렴한 술집을 자주 갔었다. 서점대신 대학로 중심에 떡 하니 말뚝 박은 술집들은 기름과 케첩 범벅인 양 많은 안주와 취할 때까지 마셔도 주머니 걱정이 덜한 덕에 언제나 대학생 손님들로 인산인해였다. 그에 반해 류해인이 데려간 선술집은 딱 보기에도 직장인으로 보이는 손님 3팀이 전부인 한산한 술집이었다. 그 나이 때까지 일본은커녕 수학여행 때 제주도 대신 경주를 다녀온 나라 퇴폐하고 정갈한 일본 술집 분위기에 저절로 기분이 들떠버렸다. 

그 순간 한 장의 파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야 너 저 그림 뭔지 알아?"

곧 아는 체를 했다.

"알 턱이 있나. 술집에서 한두 번 본 게 다야"

"가쓰시카 호쿠사이라는 거장의 작품으로 연작 후카쿠 6경 중 하나인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아래라는 작품이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대단한 화가의 작품이지"

고작 일본 미술사 한 학기 배운 게 전부인데, 시험에 잘 나온다는 선배의 꿀팁에 달달 책 내용을 외웠던 그대로 내뱉으며 경찰행정학과 룸메이트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어때? 내 설명 듣고 나서 다시 작품을 보니 뭔가 달라 보이지?"

"음.. 서핑하기 좋겠는데?"

"그러니깐 너한테는 호쿠사이 작품은 서핑하기 좋은 높이 일뿐이고, 가부키 배우랑 기녀도는 작품은 그저..."

"저 두꺼운 화장은 어떻게 지웠을까..?"

저명한 학자들이 입을 모아 일본 근대 미술을 상징하는 작품을 그저 서핑하기 좋은 높이의 파도로 격하시킨 내 룸메이트 발언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열이 받는 건 무식함에도 굴하지 않고 그게 뭐 어쩌라고?라는 식의 뻔뻔한 태도가 나를 더 자극했다. 지기 싫은 마음이 들어 그날 술자리에서 2시간 넘게 원색의 강렬한 색채나 틀에 박히지 않은 대범한 구조의 우키요에 화풍에 대해 연설 2막을 이어갔지만 류해인은 고개만 끄덕일 뿐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 류해인에게 자존심이 짓밟힌 밤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미안해요. 저 그림만 보면 나도 모르게 옛날 생각이 나서"

"미술사 전공하셨나요?"

"네. 미술사학 전공했습니다."

"학교 다니실 때 공부 열심히 하셨구나."

"그럭저럭요. 유리 씨는 저 파도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높은 파도 뒤에 있는 후지산이 금방이라도 잠길 것 같아 보여 무서워요."

"저는 서핑이 떠올라요"

"서핑이요? 이 정도 높이에 서핑이 떠오른다면 엄청난 실력가신가 봐요. 대단하세요"

동경하는 눈빛을 마구 날리는 유리 씨의 큰 눈을 다시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겨우 흉내만 낼 뿐이에요."

처음 서핑을 접한 건 어린 시절 엄마와 텔레비전 채널을 하염없이 돌리다 우연히 나온 장면으로 기억된다. 앳된 외국 여자들이 무럭무럭 잘 자란 수입산 오렌치처럼 상큼한 미소를 지은 채 거친 파도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꼭 승리의 여신 니케와 같았다. 인간으로 변신한 니케들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무렵 깜빡 잊고 있던 엄마는 콩나물 대가리를 거칠게 다듬으며 어느새 질투의 화신 젤로스가 되어 니케들을 날카롭게 쏘아댔다.

"윤아야 저거 봐 서양년들은 가슴 다 드러낸 야시꾸리한 수영복 입고, 지네들끼리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돌아 다니지? 우리 한국여자들은 저렇게 다니면 안 되는 거야."

그날 엄마의 경고는 어린 이윤아 무의식 깊은 곳에 무력감과 반항심을 심어 주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충청도 엄마와 달리 드넓은 미국 땅에서 자란 여자들처럼 파도를 타자. 그 다짐이 어린 시절의 아른한 기억에 잊혔을 때 필연으로 만난 동갑내기 룸메이트의 취미 덕에 국내 서퍼들이 즐겨 찾는 강원도 양양의 죽도해변, 송전 해수욕장과 경기도 시흥의 인공 서핑장에서 이따금 되살아 났다. 그렇게 나는 서퍼광인 류해인 덕에 바닷가 짠물에서 락스 물까지 다양하게 마시며 파도 타는 법을 익혔다.

"이번 여름휴가는 서핑을 즐기시러 가시나요?"

"아니요. 이번에는 호텔에서 보낼 예정이에요."

"호텔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으세요?"

졸업 후 내손에 들린 건 한 장의 졸업장과 앞으로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 상환 문자였다. 인문학과를 전공한 사회 초년생 삶은 축축하고 좁은 반지하방이 제격인 법. 오로지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동선으로 배치한 가구 틈에서 휴가란 사치였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살아있는 끈적한 생명체로 어깨에 들러붙어 말을 걸 때마다, 류해인이 기분 전환이라며 자주 데려간 부드럽고 깨끗한 시트에 따뜻한 빵과 향긋한 커피가 제공되는 호텔이 자주 생각이 났다.

"전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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