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적응능력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그녀의 책에 매료되어 10만 원치를 추가로 구입했다.
이번 겨울은 유독 몸이 고되다. 많게는 주 83시간 근무, 평균 취침시간 4시간, 밥 챙겨 먹을 시간도, 책을 읽거나 운동하거나와 같은 취미활동도 모두 포기하고 매일 일만 하기 급급하다.
일하고 있는 곳 특성상 겨울이 가장 성수기이기 때문에 주문 건을 쳐내려면 3~4시간 연장은 필수인 데다, 투잡까지 병행하고 있어서 몸이 성할 틈이 없다. 손마디는 붓고, 피부는 뒤집어지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있는 듯하다. 가벼운 동상 증상에, 팔 곳곳에는 화상 자국들이 난무하고, 매일 피곤에 절어 잠들다 보니 집이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채 일을 하다 보니 새벽에 일하는 곳은 괜찮지만 오후에 일하는 곳에서는 생리적인 반응으로 인지 능력이 떨어지거나, 예민해지거나, 몸이 둔해지고, 눈꺼풀에 힘이 풀리거 나와 같은 신체적인 증상들이 나타났는데,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때마다 사장님께 피해를 주는 것만 같아서 이러한 반응들 또한 의식적으로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요즘은 3시간을 자고 오전에 13시간을 일한 후 오후에 출근을 해도 사장님이 모를 정도로, 몸 처신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런 일상을 보낸 지 2개월 차가 되니,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나는 새벽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당이 안 돼서 잠을 10시간 이상씩 자고는 했는데 요즘은 2-3시간만 자고도 고강도 일을 쳐낼 수 있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힘들고 몸이 아프고 위험천만한 일을 주 6일을 하더라도 적응에 성공하면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적응’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처음에는 아침 6시에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서 자명종을 두 개를 세팅하고 잠을 청해도 지각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시간인 새벽 4시, 3시에 출근을 하거나 더 나아가서 자정에 출근하여 그날 오후 5시 30분까지, 총 17시간 30분을 휴게시간 없이 풀로 일을 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아침잠에 못 이겨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졌다. 2-3시간만 자더라도 아주 작은 소리에 깨서 10분 만에 준비하고 출근하러 나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몇 시간을 잤는지, 전날에 또는 오전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전날에 술을 마셨는지와 같은 요인들은 분명, 당일 컨디션에 지대한 영향을 주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러한 요인들이 크게 내 컨디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잠을 적게 자고, 너무 많은 일을 한 탓에 컨디션이 안 좋을까 걱정한 날에도,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서 일을 수월하게 쳐내는 경우도 있고 잠을 충분히 자고 전날 충분히 쉬었음에도 다음 날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있다.
생각해 보면 개별적 요인들보다도 나의 컨디션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힘든 일을 소화할 수 있는 힘에 영향을 주는 것은 두 가지다. ’생각‘ 그리고 ’감정’
2022년 8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달이다. 그로부터 2년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100권 이상의 책을 기본 3 회독씩 정독하였다. 읽으면 생각하고 글을 쓰고 기록했으며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과정 속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문제점들과 단점들을 발견하고 보완하며 개선하는 과정을 거쳤고, 지금의 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정말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다.
첫 번째 내면이 안정되었고, 두 번째 효율과 능률을 최대로 끌어올려 월 수입을 두 배 이상 증가 시켰으며, 세 번째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고 있다.
2년 전에 나는 사회불안장애, 대인기피증 두 가지 증상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흔한 친구 한 명 곁에 두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위축되어 있었고, 강박적으로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숨기고 타인의 입맛에 자신을 맞추기 급급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읽었던 책은 오은영의 화해, 사회불안장애 pdf 본, 내면소통이다.
책을 읽으며 무수히 많은 곳에 밑줄을 긋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감탄하며 어릴 적 생겼던 상처가 얼마나 많이 곪아 있었는지, 나는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본질은 무엇인지 파헤치고, 이해하고 수용했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습관적으로 나를 괴롭혔던 불안증상과 두려움이 말끔히 사라지고, 내적인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사람대 사람과의 마찰 또한 내 능력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나를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불만, 과거에 대한 집착 이 세 가지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두려움의 원천이지만 나는 이 세 가지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스케줄을 안정적으로 소화하고도 일상에 대한 괴로움과 불안함,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첫 번째의 연장선이다. 내면이 불안정하고, 가만히 있어도 괴로운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본인의 감정을 타이르고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음에도 과거를 생각하면 괴롭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을 느끼며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러한 강도가 심한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 불안을 못 이겨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일이 중요하겠는가.
본인의 정체성을 견고히 다진 사람은, 내면이 안정되어 있고 내면이 폭퐁우 처럼 휘몰아치지 않고 잔잔한 바다처럼 조용히, 부드럽게 너울을 그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업무를 던졌을 때 모든 신경이 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쏠리기 때문에 효율과 능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므로 불필요한 체력 소모 또한 없다.
세전 월급 180만 원에서 410만 원까지 증가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는 연장하는 일이 많은 달에는 최대 480까지 번다.
세 번째, 시간을 활용하는 부분도 첫 번째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일이 너무 많고 지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나머지 주어지는 휴일을 형편없게 보내고 다시 출근하기 십상이다. 잠을 평소에 너무 안자다 보니 일요일에 몰아서 자다가 눈떠서 바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 황금 같은 일요일을 말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질 좋은 휴식을 취하거나 정서적인 휴식을 취할 겨를이 없어져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한다.
신체적인 휴식과 정신적인 휴식은 다르다. 충분히 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해서 정신적인 휴식을 취했다고 할 수 없다. 정신적인 휴식이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 삶의 우선순위에 맞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건지 등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시간이다.
나의 경우 정신적인 휴식은 독서와 글쓰기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강화할 수 있고, 이 말도 안 되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동기를 얻는다.
연장을 안 하는 날에는 보통 하루에 11시간 일을 하는데 새벽일이 끝나면 오후에 출근하기 전까지 2-3시간가량이 남는다. 그 시간 동안 카페에 가서 무아지경으로 책을 읽고 출근을 하고, 일요일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밀린 글을 쓰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아무리 많은 일을 하더라도 한달에 최소 4권의 책을 읽고 매주 글을 연재하고 가끔 영감을 받을 때는 긴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연장을 안하는 주간에는 오전 일을 마치고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한 후에 오후 출근을 한다.
술을 마시거나, 옛 친구들을 불러 놓고 대화를 하는 시간들은 내게 있어서 휴식이 아닌 업무와 가깝다. 그러한 시간들은 첫째로 몸이 지치고, 둘째로 인지능력과 신체능력이 저하된다는 생각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세 번째로 자기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친구이거나,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과의 자리는 이 세 가지 단점들이 전부 없어지지만 모든 친구들을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부분의 친구가 나와 정신적인 수준이 같거나 높지 않다. 책을 읽고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다. 또는 그러한 행위를 하지만 메타인지력이 처참해서 어깨 뽕만 한가득이고 실속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약한 개체인 인간이 지구에서 최정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 적응능력’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혹독한 기후에도, 끈질기고도 지독하며 잔인한 각종 바이러스에도, 매서운 동물들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적응했고, 생각했고, 문제를 발견한 후 극복할 수 있었다.
나약한 인간으로 머물 것인가, 강인한 인간으로 나아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의 생각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