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생산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의미들에 대하여
콘텐츠가 넘쳐난다는 말,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지요. 우리는 이미 유튜브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넘쳐나는 정보'에 절여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수백만 개의 영상이 업로드되고, 수십만 곡의 음악이 발매되며, 셀 수 없이 많은 글과 이미지가 인터넷 공간을 채워갑니다. 하지만 이 익숙함 때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답니다. 바로 '과잉'이라는 현상에도 서로 다른 구조와 원리가 있다는 사실이지요. 이 장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겪어온 과잉과, 인공지능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과잉을 의도적으로 구분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유튜브 시장의 과잉은 본질적으로 '경쟁의 결과'였습니다. 생산 주체는 여전히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었고, 시간과 노력, 재능이라는 병목 지점은 결코 제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지요. 유튜버가 되고 싶은 사람은 직접 카메라 앞에 서야 했고, 편집 기술을 익혀야 했으며, 시청자의 반응을 분석하고 개선해야 했습니다.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곧 탈락을 의미했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잘 만들고 더 오래 버티기 위해 자신을 소진했습니다. 여기서는 "누가 살아남는가"가 핵심이었고, 조회수와 구독자 수라는 지표를 통한 사후 평가가 모든 것을 결정했지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콘텐츠는 그 자체로 일종의 검증을 거친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과잉은 '경쟁 이전의 과잉'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차이점이에요. 시스템 자체가 생산자가 되어 비용 거의 없이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우리가 경쟁하거나 노력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 형태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옵니다. 인간이 한 시간 동안 고민해서 만든 글보다, 인공지능이 10초 만에 생성한 글이 더 많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아무리 더 잘 만들거나 빠르게 만들어도 이 과잉 상태 자체는 결코 해소되지 않아요. 경쟁자가 아니라 시스템이 곧 생산자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인공지능은 쉬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이 조건에서는 기존의 질문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더 잘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은 과잉을 줄이지도, 의미를 고정시키지도 못하니까요. 더 잘 만들면 인공지능도 더 잘 만들고, 더 빨리 만들면 인공지능은 더 빨리 만듭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와 양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우리에겐 "무엇을 더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멈출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도덕적인 성찰이 아니라, 생산이 스스로를 정리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터져 나온 지극히 기술적인 질문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