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긴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열여덟 살 소녀는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됐습니다. '앞길 창창한 총각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는 그릇된 성인식을 가진 사법기관의 횡포에 희생당한 피해자가 됐습니다. 영장 없이 6개월간 구속하면서 자백을 강요했던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 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며 고개 숙여 사과합니다.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였던 최말자 씨의 친구들이 집 대문을 두드리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친구들이 제사를 지내고 남은 떡을 주기 위해 최 씨 집을 찾아온 것이었는데요.
그런데 어떤 남자가 친구들 뒤를 따라옵니다. '할 말이 있다'며 불러 세우기도 했죠. 최 씨는 친구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가르쳐 달라"는 노모 씨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친구들의 집 방향과 반대편으로 길을 안내한 최 씨는 "큰길을 따라가라"고 알려준 뒤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 씨가 최 씨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고, 배 위에 올라타 입을 맞췄습니다. 최 씨는 노 씨를 밀치고, 도망치고, 다시 발에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했죠.
세 번째에는 넘어지며 돌에 부딪혔는지 잠깐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나니 노 씨는 온데간데없고, 입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어 뱉어내고 집으로 뛰어갔죠. 최 씨는 입안에 있던 이상한 것이 노 씨의 혀였다는 사실도, 자신이 남자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후 최 씨는 '파도처럼 덮쳐오는 나쁜 일'에 휩쓸립니다. '피해자 최말자'는 사라지고, '가해자 최말자'만 남게 됐죠. 노 씨는 최 씨를 상해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최 씨를 구속했습니다. 검찰에 넘겨지는 과정에서 노 씨는 '강간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으로, 최 씨는 '중상해죄'로 송치되며 정당방위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되죠.
최 씨는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 법원은 최 씨가 생면부지 남성이었던 노 씨와 거리에서 20분간 말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대담하게도 키스하려는 충동을 (노 씨가) 일으키는 데 어느 정도의 보탬은 됐을 것이라는 도의적 책임도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판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최 씨에게 "남자 하나 불구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결혼하면 된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판사는 "처음부터 피고인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 "결혼해서 함께 살 생각은 없습니까" 등 2차 가해를 했죠.
최 씨는 6개월간 구금 끝에 이듬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노 씨에게는 강간미수를 제외한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최 씨보다 가벼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됩니다.
어렸던 최 씨는 자신이 당한 일이 대체 무엇이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는 이후 이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가슴속 한으로 묻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깨달은 것은 어릴 때 못다 한 공부를 하기 위해 늦게나마 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였습니다. '성, 사랑, 사회'라는 과목의 수업을 들으며 성폭행이라는 용어와 피해자인 자신이 보호받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당시 평등하게 재판받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최 씨는 56년 만에 용기를 냅니다. 2020년 5월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것인데요. 하지만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최 씨의 청구를 잇따라 기각합니다. 법원은 '검사가 불법 구금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최 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고, 반세기 전 사회문화적 환경은 오늘날과 다르다며 청구를 기각합니다.
재심 청구는 대법원까지 들어갔는데요. 다행히 대법원은 "최 씨의 주장이 옳다고 볼 정황이 충분해 법원 사실조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서 61년 만에 재심이 열리게 되죠.
지난 7월 23일 열린 재심 공판에서 검찰은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그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으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했음에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줬다"며 최 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지난 10일 부산지법은 최 씨의 중상해 등 혐의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합니다. 재판부는 노 씨가 '일생 말 못 하는 불구의 몸'이 됐다고 판단할 만한 증거가 없어 중상해라 보기 어렵고, 일반 상해죄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므로 범죄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선고 뒤 최 씨는 "61년 전 18세 소녀였던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동돼 나의 운명은 죄인이 됐다. 주변에서 바위에 계란 치기라고 만류했지만, 이 사건을 묻고 갈 수가 없었다"며 "역사와 기록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