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심장이 떨린다"

by 연산동 이자까야

긴급조치. 1972년 10월 17일 공포된 유신헌법의 가장 강력한 국민 통제수단. 1975년 발동된 긴급조치 9호는 박정희 정권에게 무소불위 권력을 안긴 ‘끝판왕’입니다. 유신헌법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었거든요.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입장해 앉아 있다. 연합뉴스

1979년 10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철폐를 요구하는 부마민주항쟁이 들불처럼 번집니다. 군사정부는 탱크를 동원해 무력진압에 나서는 한편 수 천명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연행. 그 해 10월 17일에는 부산 중구 대청동의 육교를 걷던 고교생 서회인이 경찰이 쏜 최루탄 파편에 얼굴을 맞아 응급실로 실려갑니다.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던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 고인의 어머니 김영자(82) 씨는 지난 5월 국가 보상금 일부를 기부하면서 “아직도 심장이 떨린다”고 울먹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에 의해 막을 내립니다.

대법원이 30일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일 뿐 아니라 민사적 불법행위인 만큼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3월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던 판례를 7년 만에 변경한 셈. 권력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사법적인 구제를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원고 측은 앞서 2013년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은 2015년 5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립니다. 그 해 3월 나온 대법원 판례 때문. 당시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라고 하면서도 국가에 배상 책임은 없다고 판시해 논란을 낳았습니다. 2심 역시 패소 판단을 하자 원고 측은 2018년 대법원을 찾아갑니다. 4년의 심리를 마친 대법원은 이날 “긴급조치 9호로 발생한 불행한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독재의 폭압에 고통받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정당한 배상에 속도를 내야 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설렁탕 취소했는데 깍두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