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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강제실향민과
젠더 박해

by 연산동 이자까야

라틴아메리카지역은 세계적 규모의 강제실향민 발생지역입니다. 강제실향민에는 난민, 국내실향민, 난민신청자 그리고 국경을 넘어 해외에 체류하는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죠. 전체 강제실향민의 65%를 차지하는 국내실향민은 국경을 넘지 않고 자국에서 이동과 정착을 반복하며 상황에 따라 국경을 넘는 예비난민으로서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입니다.

21764_1695115324.png 멕시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 대통령과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지난 9일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라틴아메리카지역은 기후변화, 경제 및 정치위기 그리고 식량 부족 등 글로벌 위기와 함께 마약범죄조직에 의한 무력 분쟁과 폭력으로 대규모의 국내실향민이 발생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지역의 인권침해 논란에 있어서 국내실향민은 중심을 형성합니다. 특히 역내 주요 국내실향민 발생국인 콜롬비아와 멕시코는 지난 20년 동안 마약범죄조직의 폭력을 동원한 자본축척 과정에서 경제적 이권이 집중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실향민이 증가했습니다.


1990년대 말 마약 및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콜롬비아와 멕시코는 힘에 의한 국가안보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정부군과 우익민병대 그리고 반군 및 마약범죄조직의 무력분쟁 격화로 국내실향민이 증가했습니다. 국내안보 위기 속에 역내 최대 국내실향민 발생국인 콜롬비아의 경우 2010년 집권한 산토스(Juan Manuel Santos)대통령은 적극적인 반군과 대화를 시도, 2016년 반군조직 FARC(콜롬비아 무장혁명군)와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역내 최대 좌익 반군조직인 FARC는 인민정부 수립을 목적으로 1964년 등장해 무력으로 정부를 위협했죠. FARC는 1980년대부터는 마약범죄 조직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활동자금을 확보했으며 이후 정치적 신념으로부터 멀어진 범죄조직으로 성장해 마약 밀거래, 불법광산 채굴, 테러 및 납치 등 지하경제를 통제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반군 및 마약범죄조직 소탕을 목적으로 콜롬비아 정부에 의해 양산된 우익민병대가 분쟁지역 농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 국내실향민은 오히려 우익민병대에 의해 증가했습니다. 분쟁지역 강제 이주는 국내실향민 규모의 확대뿐만 아니라 농촌주민 실향의 장기화 그리고 젠더에 기반한 박해로 실향민 증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젠더 박해는 정부군 및 민병대 그리고 반군조직에 의해 자행됐죠. 장기 무력분쟁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은 젠더 박해 가능성을 높였으며, 분쟁격화지역일수록 젠더 박해는 빈번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분쟁지역을 이탈한 국내실향민은 반복되는 이동과 정착 과정에서 또 다른 젠더 박해를 경험함으로써 실향이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젠더 박해는 주로 성별에 기반한 불평등과 여성의 피해사실을 강조하는데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젠더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반드시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남성 중심적 가치와 규범이 반영되어 성립된 것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젠더 박해는 권력을 갖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의해 주변화한 여성뿐만 아니라 이성애 남성들도 대상이 됐습니다. 분쟁지역 젠더 박해는 주로 성폭력과 관련을 맺고 전개됐습니다. 성폭력은 무력 사용, 강압, 심리적 억압, 권력 남용 또는 폭력을 동원한 모든 성적행위를 의미하지만 오늘날 법의 언어를 뛰어넘어 광범위하고 다층위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국립역사기억센터는 성폭력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모든 성적행위뿐 아니라 피해자의 취약성을 악용한 강간, 인신매매, 강제누드, 성적학대 및 착취, 강제불임, 강제임신, 강제낙태, 성기절단, 음란물 제작, 성고문, 성노예, 성희롱 그리고 의무적인 성행위 관람 등을 모두 성폭력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성별에 기초한 불평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차별받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을 정도의 남성에 대한 젠더 박해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남성이 남성에 대한 성폭력은 일탈행위가 아닌 힘과 권력에 의한 억압의 기제로 동원되었으며 적의 권위약화, 주민통제 그리고 강제이주 조장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됐습니다. 스스로 무장할 힘이 없는 남성은 젠더 박해의 대상이 되었고, 남성에 대한 젠더 박해는 여성과 LGBT그룹에 대한 박해보다 상대적으로 은폐되거나 축소됐습니다. 이성애 외에 다양한 성적 지향에 대한 편견이 뿌리 내린 사회에서 남성 젠더 박해 피해사실은 은폐되거나 단순한 신체적 피해로 간주됐죠. 남성에 대한 젠더 박해가 기존 젠더 박해 범주로 이해되고 통합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법기관 및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남성 젠더 박해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보상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피해자들은 배제와 소외 그리고 편견의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남성 젠더 박해 피해자의 소외된 경험이 복원돼 이들의 고립된 현실이 더 이상 외면당하는 오류가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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