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재판소원'으로 정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 이후 각종 법안 상정을 통해 사법부 압박 수위를 높입니다. 민주당 정진욱 의원은 지난 14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는 사유에 '법원의 재판'을 추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에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혀 계속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되죠.
헌법소원은 위헌적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헌재에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입니다. 원칙적으로 모든 공권력, 즉 입법·사법·행정 작용 모두가 헌법소원 대상입니다. 법원의 재판도 공권력 행사의 하나이기에 헌법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하면 당연히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런데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합니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인데요. 입법부나 행정부의 작용과 달리 사법부, 그중에서도 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습니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 확정판결이라고 해도, 그 판결로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된 국민은 헌재에 다시 한번 판단을 구할 수 있죠.
재판소원은 양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오랜 기간 이견을 보였던 주제입니다. 헌재는 재판소원에 찬성하는데요. 지난 15일 헌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재판소원 도입에 관해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헌재는 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위헌 판단이 내려지면 이를 따르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헌법소원 절차 중 가처분 허용을 명확히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죠. 또 헌재는 독일 대만 스페인 체코 튀르키예 등 다른 나라에서도 재판소원을 인정한다고 설명하면서, 재판소원이 인용되면 재심과 환송심 등 후속 절차도 법에 명시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견해는 다릅니다. 대법원은 현재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이어지는 3심제가 사실상 헌재를 정점으로 하는 4심제로 변질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한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너도나도 헌재로 사건을 끌고 가 소송이 폭주하고, 이는 결국 재판 지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지난 14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현행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헌법 규정에 반한다"며 재판소원에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재판소원은 1988년 헌재 출범 이래 대법원에서는 금기어로 통했습니다.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으면 최종심급이자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권한 상당 부분이 헌재로 넘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는데요. 판결을 확정하고 새로운 판례를 형성하는 대법원의 기존 역할이나 기능이 헌재로 이관되는 셈입니다. 1987년 개헌 직후 헌법재판소법 제정 과정에서도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죠. 결국 헌법소원 대상에서 재판이 제외됐지만 두 기관의 신경전은 이어졌습니다.
갈등은 계속되는데요. 대법원과 헌재 모두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관한 구체적 이견 조율 등의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헌재가 사실상 재판소원에 찬성하면서 앞으로 대법원과 치열한 공방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