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된
'나 홀로 어린이'

by 연산동 이자까야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가수 정태춘이 부른 '우리들의 죽음' 가사 도입부입니다. 이 노래가 발표됐을 때 사회적 파장은 매우 컸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다룬 문제작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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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나는

'우리들의 죽음'

1990년 3월 9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반지하 연립주택에 살던 5세, 3세 남매가 집안에서 불장난을 하다 발생한 화재로 숨졌습니다. 아빠는 경비원, 엄마는 파출부로 일하며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워야 했는데 출근한 사이 아이들이 위험에 빠질까 봐 밖에서 문을 잠근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부 제도 개선이 이뤄져 이듬해인 1991년 영유아보호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집에 아이만 남겨지는 현실을 불가피하게 여기는 경향은 여전합니다. 정부가 돌봄·육아 지원을 강화하고는 있지만 공백은 여전히 크고요. 1990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우리들의 죽음'과 닮은 '나 홀로 어린이 참사'는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달 24일 부산 부산진구 아파트에서 청소 일을 하는 부모가 이른 새벽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나 10세, 7세 자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2일 밤에는 기장군 아파트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발생한 화재로 9세, 6세 자매가 변을 당했죠.


아이 키우기

힘든 나라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 하반기(10월) 지역별 고용 조사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취업 현황'을 보면 지난해 부산 맞벌이 가구는 34만2000가구로, 직전년도(2023년)보다 4000가구 늘었습니다.


배우자가 있는 가구를 뜻하는 '유배우 가구' 대비 맞벌이 가구 비중도 2023년 42.3%에서 지난해 43.3%로 증가했습니다. 배우자가 있는 가구의 절반 가까이가 맞벌이 세대로, 이 중 자녀를 키우는 가구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국의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구 비중은 유배우 가구 대비 58.5%인데요.


야간노동도 갈수록 증가합니다. 근로기준법상 야간노동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사이의 노동을 말하는데요. 고용노동부의 건강진단 실시 현황을 보면 전국 기준 등록 야간작업 노동자는 2018년 108만5856명에서 2023년 124만7044명으로 16만 명 넘게 늘었습니다.


돌봄 공백으로 인한 참사를 막기 위해선 어린이를 집에 혼자 두지 않아야 하는데, 맞벌이 가정이 늘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현재 지자체와 정부가 추진 중인 어린이 돌봄 정책의 대부분이 낮 시간대 직장인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야간에 일하는 자영업자나 특수직 근로자 가정 자녀에 대한 돌봄에 구멍이 생겼고요. 어쩔 수 없이 부모가 일터로 나가면서 아이 혼자 집에 남겨 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실은 정부가 조사한 통계 자료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가족 실태조사 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이 방과 후 돌보는 사람 없이 혼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은 ▷1시간 이상~2시간 미만(16.8%) ▷30분 이상~1시간(14.5%) ▷2시간 이상~3시간 미만(9.0%) ▷3시간 이상(2.3%) 순입니다. 방과 후 보호자 없이 아이만 1시간 이상 있는 비율이 전체의 28.1%에 달한 것입니다.


정부는 보호자 없이 아이 혼자 방치되는 상황에 대비한 아이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고는 있으나, 돌봄 공급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부산시교육청의 24시간 긴급보살핌늘봄센터는 총 29곳으로, 이 중 시교육청 소재 늘봄센터 1곳만 24시간 운영합니다. 영도놀이마루 늘봄센터가 오후 2시부터 0시까지 운영하나, 나머지 27곳은 밤 10시까지라 심야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죠.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맞벌이가 아니면 먹고살기 어렵습니다. 경기 악화가 심화하는 상황과 맞물려 야간노동 등 비정형 근로자가 증가하고요. '9 to 6' 직장밖에 없는 줄 아는 정책이 넘쳐납니다. '저출생이다' '이대로 가면 노인만 남은 나라가 될 거다' 말은 많지만, 정작 있는 아이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부모의 사정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만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심야시간대 돌봄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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