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의 그늘

by 연산동 이자까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고용허가제'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최근 전남 나주시 한 벽돌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 이주노동자 A 씨를 흰색 비닐 랩으로 벽돌 더미와 함께 결박해 지게차 화물처럼 들어 올리는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A 씨가 옴짝달싹 못 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 노동자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웃거나 "잘못했다고 해야지"라고 다그치는 등 조롱하는 장면도 담겼는데요. 이런 가혹행위는 30분가량 이어졌습니다. A 씨는 이후 5개월을 더 근무하다 참지 못하고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에 피해 사실과 영상을 제보하며 도움을 요청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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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영상을 본 이재명 대통령은 "생업을 위해 이역만리 길을 떠난 대한민국 국민이 귀하듯,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인권도 지켜져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 침해를 철저히 엄단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각 부처가 소수자, 사회적 약자, 외국인 노동자 같은 소외된 영역의 인권 침해 실태를 최대한 파악하고 재발하지 않게 하는 현실적 방안을 보고해 달라"며 포괄적 제도 개선을 주문했죠. 이에 전남경찰서는 곧장 조사에 착수했고, 고용노동부도 문제의 사업장을 기획 감독했는데요. 대통령까지 나서 분노하고, 경찰과 노동부가 조사에 나섰지만 고용허가제(E-9)의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는 비슷한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거주하려면 비자가 필요합니다. 이때 고용허가제 비자를 받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국내에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업장 변경이 극도로 제한됩니다. 특정한 업체의 특정한 근로 조건을 전제로 입국했기 때문이죠. 고용된 업체의 휴·폐업 등 이주노동자의 귀책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사업장 변경 승인을 신청할 수 있는데요. 이직은 첫 3년간 3회까지, 나머지 1년 10개월은 2회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폭행 등 예외적인 이유로만 횟수에 상관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있지만, 변경 후 3개월 이내에 재취업해 서류 등록을 하지 못하면 비자를 잃어 불법 체류자나 강제 출국 대상이 됩니다.


고용허가제 비자 발급은 사업장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기 쉽지 않은데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이주노동자와 고용주 간 위계를 견고히 해 임금 체불은 물론 상시적 폭력과 같은 인권 침해를 발생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대다수 이주노동자는 외부의 적극적 도움 없이는 폭행, 임금 체불, 성희롱 등 피해를 보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죠. 고용허가제는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도 문제점을 지적한 적 있는 악명 높은 제도입니다.


민주노동연구원은 '고용허가제 대안 연구' 보고서에서 "고용허가제는 정주화를 막기 위해 단기간 일을 시키고 돌려보내는 단기순환 제도로 설계됐지만 장기간 숙련된 노동력을 원하는 사업주의 요구에 의해 10년 가까이 일하는 제도로 변화했다"며 "그러나 사업장 변경 제한, 열악한 임금과 근로조건, 임시가건물 기숙사 등 주거환경 문제, 높은 산재사고·사망률, 심각한 임금체불 등 권리 침해와 차별은 나아지지 않고 모든 권한은 사업주에게만 주어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숙소 기준 명확화, 산재 근절과 건강권 보장 등을 요구했죠.


노동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용허가제 개선책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보호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위험한 근무 환경에 놓이면 원활히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고용허가제를 개편할 것"이라며 "모든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근무 환경, 산업 안전, 고용 서비스 등을 통합 지원하는 지원 체계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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