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말싸움은 종종 주먹다짐으로 번집니다. 도가 지나치면, 둔기·흉기 또는 살상용 무기까지 동원되죠. 말이 참 무섭습니다. 내뱉으면 절대 주워 담을 수 없죠.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비수를 꽂고, 평생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간혹 용기 없는 사내들 사이에 허세 부리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런 말싸움이 수십 년간 끊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남과 북의 군사분계선(휴전선).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거대한 확성기로 독설과 비방을 날려 보냅니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인권 실상을 폭로하는 말이 음파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습니다. 뉴스나 일기예보, 최신 가요 등으로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북 긴장의 정도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습니다. 1962년 북한이 먼저 대남 확성기를 꺼내자, 이듬해 5월 박정희 정부는 서해 군사분계선 일원에서 첫 대북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1972년 ▷상호 비방 중단 ▷무장 도발 자제 ▷남북 교류 확대 등이 포함된 7·4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같은 해 11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멈춥니다.
하지만 1980년 9월 전두환 정부는 북한의 대남 방송 재개에 반발해 대북 확성기를 다시 가동하죠. 여기에 더해 대북 전단을 대거 뿌리며 본격적인 심리전에 나서기도 합니다. 이후 남북 관계는 장기간 극도의 대치 국면에 접어들죠.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간 남북 정상회담은 비무장지대(DMZ)에 잠시나마 평화를 선물합니다. 2004년 6월 후속 조처로 이어진 남북 군사회담 합의로, 노무현 정부는 대북 방송을 중단하고 확성기를 철거하죠.
대북 확성기는 정권이 바뀌면서 또 부침을 겪습니다. 2010년 6월 이명박 정부는 확성기를 재설치합니다. 북한의 천안함 피격이 결정적 원인이었죠.
박근혜 정부 때는 ‘재개 → 중단 → 재개’를 되풀이합니다. 정부는 2015년 8월 북한의 DMZ 지뢰 도발에 대응해 확성기를 켰지만, 8·25합의로 보름 만에 끕니다. 그러나 2016년 북한의 핵실험에 경고 메시지를 전하려 대북 확성기 방송을 틀었습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27판문점선언 합의로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하죠. 판문점선언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역시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 등에 응수해 6년여 만인 2024년 6월 철거했던 대북 확성기를 다시 끄집어냅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전 수단’입니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말’로써 가장 아픈 곳을 찌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확성기 출력을 높이면 야간엔 24㎞, 주간엔 10㎞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방송이 들린다고 합니다. 군사분계선 인근 부대에 밤낮으로 말싸움을 걸어, 북한군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겁니다. 북한이 2015년 8월 DMZ를 포함한 서부전선 대북 확성기를 포격한 것도, 말싸움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방증합니다.
이처럼 남북 정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북 확성기가 또다시 창고로 들어갑니다. 국방부는 4일 고정식 확성기 20여 개를 모두 철거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달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를 지시한 데 이은 조처입니다. 이동식 확성기 10여 개는 지난달 대북 방송을 끊으면서 이미 철수했습니다.
대북 확성기는 주로 보수 정부 때 틀고, 진보 정부 때 껐습니다. 남북 관계에 대한 시각 또는 신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남북 간 화해를 유도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죠. 대북 방송을 재개하든 확성기를 철거하든, 정부의 결정은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맞춰져야겠습니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우리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도 대남 소음 방송을 멈추며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북한이 대남 확성기를 철거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남북의 시끄러운 말싸움에 오랜 기간 고통을 겪은 군사분계선 주변 지역 주민도 이제 편히 잠을 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