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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Jun 24. 2024

은퇴 후 드럼을 배운 지 6개월 됩니다.

손발은 바쁘게 마음은 한가롭게

은퇴하고 드럼을 배운 지 6개월 됩니다.

손발은 바쁘게 마음은 한가롭게     


1979년에 발표한 Donna summer의 Hot Stuff를 기억하시나요. 70, 80년대 디스코 열풍을 주도했던 이 노래는  5월 대학 축제에서 쿵칫타치 리듬에 맞추어 춤도 추었던 젊은 날의 추억이 깃든 노래지요.      


한창 열정 가득한 나이에 들었던 노래를 잊고 산지 오래, 곡의 비트만으로도 설레던 그 노래가 이번 주 드럼 연습곡입니다.      


드럼을 배운 지 6개월이 됐습니다. 은퇴하고 악기 하나는 다루고 싶었지만 드럼을 염두에 둔적은 없었는데 추운 겨울 어느 날 평소와 달 사랑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언니를 보고 새로웠습니다. 언니가 드럼을 시작하더니 하루의 빈틈을 음표로 채운 듯 잡념 없이 흥겨워 보였거든요.


늘 주식 차트만 들여다보고 인상 쓰던 언니의 표정이 달라진걸 보니 이거다 싶어서 드럼학원에 바로 등록했지요.      


살면서 잡아본 악기라곤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피리, 탬버린이 전부인데 드럼을 칠 수 있을까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드럼 하면 현란하게 연주하는 드러머들이 연상되지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으니까요.      


무의식 중에 흥얼거릴 수 있는 리듬이 있다는 게, 그리고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게 좋았습니다. 첫 수업에 스틱 잡는 법과 간단한 음표설명만 듣고 이승철의 ‘그 사람’을 연습곡으로 받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무시로 들으니 글만큼이나 선한 노래 가사와 부드러운 음이 한주 내내 몸에 스미는 듯했습니다.


속도감 있는 곡을 연주할 때는 몸 안에 모다기모다기 쌓여있던 전기가 드럼스틱으로 시원하게 빠져나가는 듯해서 개운했고  또 드럼 패드를 힘껏 내리치니 연습이 끝나고 나면 팔뚝부터 손바닥까지 얼얼하긴 하지만 온몸이 땀으로 촉촉해지며 몰입감을 맛보기도 했지요.      


이 정도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곡의 빠르기가 120을 넘어가고 왼발까지 이용해야 하는 드럼 입문 4달째가 고비였습니다. 마음은 바쁘고 메트로놈은 쉴 새 없이 속도를 내는데 스틱을 잡은 손이 이에 따르지 못하니 몸은 리듬과 상관없이 주책맞게 흔들거리며 가관이었습니다.


물론 경쾌하게 타닥타닥 둥칫둥칫 나와야 할 음은 한없이 뭉개져서 소음이 됐지요.     


음표로 몸을 채우겠다는 초심을 잃고 어느새 현란한 드러머를 꿈꾸었나 봅니다. 드럼은 정확한 박자를 유지해야 하는 악기인데 대뜸 빠른 곡을 빠르게 치려다 보니 거의 한 달은 정체기였습니다.      


120 속도의 곡을 연주하려면 속도 60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올려가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어설픈 자신감으로 그 더딘 과정을 생략하고 싶었던 거죠. 그러나 바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일, 음표 하나하나 제 자리가 있고 제가 내야 할 소리가 있더라고요.     


드럼뿐이겠습니까.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음을, 또 그 자리를 존중해야 내 자리도 용인될 수 있음을. 그러니 몸은 바빠도 마음만은 한가해야 그때그때 그 자리에 충실할 수 있을듯합니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에도 반려견 올리를 병원에 데려갈 마음으로 분주합니다. 유독 병치레가 잦은 올리가 병원 100미터 전부터 흥분해서 들썩거리고 입구에서는 안 들어간다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떼를 씁니다.  


이번엔 어떻게 구슬려서 들어갈까를, 지금 이 자리에 집중하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는 저를 바라보면서 독자분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어떠신가요. 오늘 한가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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