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회복시키는 온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름의 잔열을 안고 있던 공기가 오늘은 차분한 물결이 되어 마음을 쓰다듬으며 선선한 계절을 예고한다.
나는 이 계절을 ‘찬 국에서 따뜻한 국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라 부른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국물을 찾는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 오래된 피로,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공허를 데우고 싶어서다.
그날도 그랬다. 퇴근길에 계획에도 없던 무와 두부, 대파가 장바구니에 담기는 순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은 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국이 내 안의 균열을 메우고 부서진 조각을 꿰매어 줄 것임을 짐작했다.
차 안에서 “국 끓여야겠다”라는 혼잣말이 흘러나올 때, 마음이 먼저 나를 안아 주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냄비에 물을 올리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는다. 김이 피어오르면 부엌의 공기와 나의 마음이 함께 데워진다. 국이 끓는 시간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회복의 온도’라 부른다. 스마트폰도, 음악도 없이 물이 끓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무가 익어가는 동안 마음의 금도 천천히 아물어 간다.
두부를 조심스레 썰고, 대파를 쓱쓱 썰어 넣는다. 간장 한 스푼, 소금 약간 그 단순한 의식 속에서 내 안의 허기를 어루만진다. 속도를 늦추고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라고 되뇌는 순간, 마치 상처가 씻겨 나가는 듯하다. 아무리 간단한 국이라도 이 과정은 늘 정중하다.
한동안 나는 상처를 외면했다. 낯선 기대에 맞추느라 내 마음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모른 척했고, 그 허기를 다른 것들로 채우며 자신을 흩뜨려 놓았다. 결국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면서 피로가 극에 달하고, 말 한마디가 마음을 부수는 날이 이어졌다. 그때 나를 살린 건 누군가의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작은 행동의 순간이었다. 국을 끓이는 일처럼, 단순하고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나를 되살리는 것들이 필요했다.
뜨겁고, 짭조름하고, 조금은 단맛. 그 맛 속에 하루를 다시 견디고 내일로 걸어갈 힘이 생겼다.
아무도 없는 집, 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나는 쓸쓸하지만 고요하고, 비어 있지만 충만했다..
국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도 잘 버텼어.”
“수고했어.”
“괜찮아.”
바람이 서늘해지는 계절엔 무엇보다 국이 먼저 생각난다. 그것은 외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데우는 데 필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국은 하루가 풀리고 견디는 힘이 다시 생긴다. 그것이 나를 다시 회복시킨다.
뜨거운 국물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나를 일으켜 세울 온도가 된다. 아직 전하지 못한 위로와 자신에게 건네는 미안함, 그리고 다독임이 그 안에 스며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또 다른 국을 끓이며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 어떤 날엔 쓰라린 고백이, 어떤 날엔 작은 다짐이, 또 어떤 날엔 깊은숨이 국물 속에 스며들어 나를 덮는다. 그렇게 한 그릇의 국물이 나를 천천히 삶의 중심으로 이끈다.
국을 끓이는 일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조용한 의식이다. 그 안에서 내 회복력이 천천히 피어난다. 오늘도 나는 그 온도를 기억한다. 속이 데워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질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내 안의 힘은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한 그릇의 국이 가르쳐 준다.
오늘 하루도 그 믿음이 마음을 살리고, 다정함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