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남의 무심함에 쉽게 휘청거린다.
바이킹이 최고점에서 낙하할 때처럼 가슴이 철렁했던 것,
어떻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수십번 곱씹으며 상심했던 것.
그런 것들을 영원에 가깝게 기억한다.
어릴 땐 극단적인 가정을 하지 않으면 좀처럼 그런 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본인이든 주변인이든 죽을 고비에 처했거나 몹시 아픈 나머지 회신 불능의 상태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밤에 잠을 못 잤다. 괴랄한 성질머리.
이젠 어리지 않아서 그런 건지, 학습의 결과인지
별일 없어도 무심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물론 머리로만.
가슴으로 이해할 길은 아마 향후 10년은 요원한 것 같다.
사실 가장 힘든 건 일일이 타격 받는 내 자신에 대한 난처함이었다.
상처 받고 방법 찾는 거. 그 두 개를 하는 동안 삼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는,
어떤 시절엔 간절히 찾아 헤맸던 나다움이겠거니 싶어졌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이렇게나 예민한 사람인 걸 알고 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무디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날카롭게 벼려진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창작은 할 수 없을 거라고도.
결과적으론 둘 다 틀린 사고였다. 나는 딱히 둔하지도 않고
세상엔 생각보다 둔한 예술가들이 많다.
메일링을 하면서 유별난 타격감과 기억력 덕을 봤다.
신나게 써재끼면서, 아 결국엔 해야 아는 거구나 싶었다.
평생 불변할 것이라 믿었던 성질들이 능글맞게 모양을 바꾸고,
싫어하기만 했던 성격들이 속도 없이 나를 도와준다.
이러나 저러나 그것들이 다 나라서,
실컷 불화하다가도 내가 용기를 낼 때는 단합해준다.
여튼 뭐든 도전했더니 그 다음이라는 걸 고민하게 됐다.
그게 사실 마냥 좋기만 하진 않다.
부담스럽고, 귀찮다. 그래도 해야겠지. 그래야 알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