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주 오랜만에 Y를 만났다. 한 3년만에. 그 사이 바뀐 식습관 때문에 전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음식을 앞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내게는 사실 Y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정확히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의 이야기는 뱅글뱅글 돌았다. 겹쳐 아는 지인들의 이야기, 새로울 것 없는 일상 이야기. 때때로 정적이 흘렀고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신기하네, 다행이다' 같은 말을 뱉었다. 평소와 달리 밥알이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씹으며 오래 식사를 한 후 내가 아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도 이미 다 마신 음료잔을 여러 번 들었다 내려놓은 뒤에야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울리는 친구들과 하는 일이 비슷해서 연락하지 않아도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나는 어색하게 인사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고 Y는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자 요청했다. 나는 그러자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할 뿐 다음을 확실히 기약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바뀐 번호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다녔지만 결국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바뀌기 이전 내 번호로 만나자는 연락을 했었다는 건 최근에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자주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생각했다. 1년여를 한몸인 듯 붙어 다니다가 언질도 없이 내리 3년을 피해다닌 사람에게 어떻게 그토록 동일한 마음을 보내올 수 있는지. 아무런 회신도 없는 상대에게 어쩜 그렇게 상처 받지 않은 말끔한 얼굴로 웃어줄 수 있는 걸까.
나는 그가 그랬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상처 받았겠네' 라고 답했으나 그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고, 다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은 커다란 이유가 있겠거니 짐작했다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잘했네요' 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 잘한 것이다. 응답 없는 이를 두고 자기 자신을 탓하는 일은 미련한 짓이니까. 만나지 않은 긴 시간 동안 그가 자신을 미워하며 지냈다면 우리는 영원히, 만나지 않은 긴 시간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Y는 오히려 그 시절 내가 그에게 줬던 마음을 얘기할 때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가 그때 서로에게 주었던 아주 커다란 다정. 자신이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들여다 보며 사소한 마음을 주는 것에 얼마나 취약했는지. 나는 사실 지난 시간 동안 그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힘들었지만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었기에 다만 손수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둘 뿐이었다.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타인을 사랑하긴 어렵죠. 따위의 말을 덧붙이면서.
우리가 알고 지낸지 4년이 되었다. 5년쯤 되었을 때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아주 친밀했다가 오래 멀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이로 정의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1년 뒤라는 가까운 미래만을 기억한다고 해도 우리는 사실상 헤어진 것이 아니라는 낙관이 가능하다. 헤어짐 속에 놓여있을 때는 그 사실을 모르지만 우리는 이제 빠져나왔고 그 미래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 지난 공백에 대해 너무 골몰하지 말자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런 말들은 전부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얻은 것들이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미래를 기억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고작 이틀 전에 읽어낸 것들이 벌써 내 것이 되었다. 내 것이 되어 Y에게로 갔다.
여하간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났다. 그것도 나의 의지로. 깨질지언정 변할 것 같지 않던 나의 마음이 몇 해간 천천히 물러져 왔다는 사실이 얼떨떨하다. Y를 만난 건 만남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내가 나와 지내며 겪은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변했고, 그 변화를 인정한 사건. 앞으로 나는 자주 미래의 나로서 오늘을 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