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ent of Lift

by 진아


나는 한국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관념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내가 고작 그런 사람인가?”하고 착각하게 된다. “네가 노력해봤자 넌 어차피 아무것도 될 수 없어”라고 속삭인다는 아니무스animus의 이야기는 단지 남성들이 여성에게 투사하는 집단 무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영향 안에서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 세대들은 그 역할을 대신 맡아 어린 여성에게 수치심을 주기도 한다.



나는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지만 존중에 대한 욕심이 있다. 단언컨대 나는 존중받고 싶다. 나는 단지 내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대로 나 또한 존중받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그것 뿐이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할 인간적인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위대한 업적과 견고한 사회적 위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한다. 나는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이 세상을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절박하다.




내가 이토록 존중을 갈망하게 된 이유는 여성을 너무나 낮게 보는 우리의 문화 때문이다. 여성 멸시..., 나는 그것을 뼛속 깊이 느낀다. 그리고 이 느낌은 나를 많이 슬프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남자들이 나를 한계 짓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나는 남자들이 구애하는 것에 우쭐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되려 슬픈 마음이 든다. 언제나 그들은 동등한 파트너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남성들은 자기중심적이 되는 것이 당연하도록 양육되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이 구애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당당히 말하고 그런 자신의 내조자가 되는 것이 나에게 최선일 것이라고 제안하는 당당함이 부러울 정도다.



동물의 세계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선지자들은 말한다. 인간의 사랑은 상대방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많은 남성들은 사랑을 받기만을 원한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도 성장하고 싶은데...나도 조금만 물을 주면 눈부시게 피어날 재능이 있는데...’


나는 내가 극도로 민감한 사람인 줄 몰랐을 때, 사람들이 일부러 나에게 상처를 주는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단지 우리가 말하지 않는 섬세한 것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들을 더 많이 공유하려고 한다. 슬프고, 두려운 감정이 들었던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이 과연 유익한 일일까? 그런 생각들이 내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저지해왔다. 나는 내 가장 깊은 곳의 자신에게 ‘뼛속까지’ 내려가 보았다.


나는 나 자신이 창작한 것에 대해서도 민감해서, 내가 쓴 글들에 이물질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투를 따라하는 것도, 허황된 단어를 쓰는 것도 그랬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무례였다. 무례는 두려움의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두렵기 때문에 서로를 무례하게 대한다. 사실 남자들도 가장의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미래가 두렵기 때문에 여성을 멸시하고 비하한다. 모든게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내 글쓰기 능력을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공격하는 데에만 사용했다. 그렇게 쓴 글들은 나를 잠시 지켜주었을지언정 나의 마음도 콕콕 찌르는 가시가 되었다.


슬퍼하면 안돼, 두려워하면 안돼, 느껴도 되는 감정이 있고 느끼면 안되는 감정이 있다고 구분 짓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울해도 괜찮다, 화내도 괜찮다, 슬퍼해도 좋다. 모든 감정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유로워진다. 저항하려고 해서 힘든 것이다. 나에게 오는 것들과 싸우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나는 마음의 파도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원하는대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을 저격하는 방법으로가 아닌, 그저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하는 방법으로도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나 자신을 공격하는 것과도 같다. 민감한 사람들은 이것을 예리하게 느끼기 때문에 수동적인 삶을 살며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내면에서 키워나간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인 ‘승화’는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우리 안에는 불쾌한 감정들을 정말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많은 것을 느끼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단점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We are truly gifted. 그리고 이 선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의 결과물에 대해 우쭐한 마음을 갖지 않아야한다. 창조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와 신비를 느끼게 하는 행복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까지 그 행복이 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항상 연구해야한다.





감정의 연금술을 배우면 이제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돌 맞는 경험들은 내가 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재료다. 나는 금을 은행에 보관할 필요가 없다. 내일 또 만들면 되니까... 많은 돌을 맞아도 괜찮다. 더 많은 돌을 금으로 바꾸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으니까. 무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꿰뚫어보고 그들을 안심시켜주는 아량까지 생기게 된다. 내 마음이 여유로우니까 나의 연약한 면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현상에 부여하는 가치다. 만약 돌이 없었다면 금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든 힘은 본래 영적인 것이며... 방해는 힘을 강하게 만든다”라고 썼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모든 경험이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과거에서 자유로워진다. 미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어떤 상처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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