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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y 12. 2023

봄, 우울증, 찌질이

봄 타는거 빨리 타고 지나가렴


누구에게나 취약점은 있다. 가족, 연애, 일, 친구 등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는 모두 다 찌질해.’ 얼마 전 만난 친구의 말이 이다지도 인상 깊은 이유는 그 ‘찌질함’ 에 공감하기 때문이겠지. 유달리 연애고수 인 것 같은 친구는 가족과 얽히면 굉장히 작아진다.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회사 동료는 연애만큼은 취약하다.




나 역시도 취약한 부분이 있다. 나는 유독 봄이 되면 찌질해 진다. 흔히들 계절탄다고 하지 않는가. 봄이 되면 그 계절을 격하게 탄다. 만물이 모두 자라나는 계절. 겨울과는 다르게 따뜻한 햇살도 나의 키 만큼 자라난다. 저녁의 길이와 아침의 길이가 눈을 뜰 때마다 달라지는 계절. 이렇듯 봄은 모든 것이 자라나는, 변화의 계절이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나는 감히 마주하기도 힘든 무력감을 만난다.




봄의 공통점은 변화이다. 앙상한 나무위로 잎사귀를 드리우고, 꽃을 비처럼 내리는 그것도 아름다운 변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동반한다. 내가 봄에 취약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물이 성장하는 시간 속에서 혼자 정체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반성해야만 하는 스스로가 싫다. 상담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봄은 저에게 힘든 계절이예요. 모두가 성장하는데 저만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상담을 이만큼 진행했으니 이제 그런 감정은 내려둘 때도 되지 않았냐는 식으로 말했다.




차가운 말투는 아니었으나 너무나도 냉정하게 들렸다. 아직도 나를 사랑할 수 없는데 마치 이쯤 했으면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지 않겠니? 하고 종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하필 너무나도 아름다운 봄날의 햇살이 가득히 쏟아지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또 우울했고 또 혼자였다. 그래 넌 지금 봄을 만나서 찌질 해진 것뿐이야. 이미 충분해 잘하고 있잖아. 다독였는데 눈물이 흘렀다. 엉엉 울면서 길가에 주저 않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이 나이를 너무 먹어버린 게 무서웠다.




<Loser> 라는 노래가 있다. ‘LOSER 외톨이. 센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거울 속에 넌. JUST A LOSER 외톨이. 상처뿐인 머저리. 더러운 쓰레기. 거울 속에 난’ 봄 앞에서 나는 늘 루저의 마음이 된다.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을 이런 가사에 쓰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심금을 울린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더러운 쓰레기 같은 계절. 모든 것이 빛나니까 나를 어둠 속에 숨길수도 없는 계절. 여전히 상처뿐인 머저리 같은 우울증 환자가 거울 앞에 있다.




찌질한건 너무너무 나쁜건가? 순간 진지하게 고찰하다가 이내 가볍게 넘기기로 한다. 친구의 말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며.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는 찌질하다. 봄을 만난 나는 아직 이다지도 힘들구나. 차라리 찌질함을 인정한다. 모두가 성장하고 있을 때 혼자 찌질함에 갇혀서 찌질하게 질질 눈물을 짜는구나. 그래도 별 수 없다. 누가 뭐래도 나의 힘듦은 여기에 있으니. 잠시 멈춰 서서 바람도 느끼고 울렁거리는 가슴도 느낀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쿵쿵 뛰다 못해 밖으로 터져버릴 것 같아도 계속해서 믿는다. 봄이 지나가고 곧 여름이 올 것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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