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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y 29. 2021

신기루 같은 그 이름은

사랑은 그때,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있었을까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널

우연히, 하필 내가 힘들 때 발견한 건지

마침내 기적처럼 우리가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인 건지

너로 인한 위로와 너로 인한 기쁨을 도저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길이 없지만

나를 구원해주어 고마워.

끝나버린 사랑이라 하더라도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아.

너로 인해 때로는 행복했고 벅찼으니 그걸로 됐어.

사랑하는 동안 행복했고 때로는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고 때로는 미워했지만

열렬히 사랑했던 기억만큼은 내 몸 안에 불씨가 되어 아직도 날 감싸주고 있어.

은인이라 말하면 거창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 말하면 어쩐지 슬퍼지는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기도 때로는 손에 잡힐 것 같기도 했던 너.

어딘가에 존재했었으나 찾을 수 없는 우리의 사랑은 신기루 같아서

그렇게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가장 큰 태풍처럼 다가왔으나 사실은 약하디 약한 흘러가는 한낱 바람 같은

사랑일 줄 모르고

언제나 지금 하는 사랑이 나를 뿌리 채 흔들고 집어삼킬 거라 생각하니까.

결국 흘러가버렸지만 가끔 선선한 바람이 내 곁을 스칠 때면 널 떠올리곤 해.

단순하게 듣지 못하고, 읽지 못하고, 먹지 못했던 지난날에 널 만나 다른 세상을 보았어.

너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함께 걸어가며 무게를 덜어내는 연습을 했고

지난 아픔에 힘껏 눈물을 흘려보기도 했지.

때로는 아이처럼 웃었어.

알고 있을까.

이제 나는 편지를 자주 부치지 않아.

수신인과 발신인이 모두 '나'였던 편지를 즐겨 쓰곤 했거든.

내용은 모두 비난과 힐난으로 가득했었지.

손 편지를 좋아해 기념일이면 늘 '너'를 향해 고맙다는 말을 늘어놓는 것과 달리

'나'를 향한 편지에는 독설이 가득했어.

너에게 보낼 편지라면 도저히 부치지도 못할 편지들.

하지만 나에겐 항상 망설임 없이 부치곤 했었어.

날이 추워지니 감기 조심해.

넌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다 잘 될 거야.

다정한 추신의 말 따위는 없었지.

항상 '너'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랬던 내가 이제는 때때로 다정한 추신을 덧붙여 보기도 해.

'너'에게만 쓰던 추신을 불어오는 바람처럼 '나'에게로 가져와.

길고 긴 다정한 말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네가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발돋움하는 것은 내 몫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네가 그랬었지.

이 문을 열고 나가면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언젠가 추신으로 써볼까 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맘을 다시 되돌려서 행복한 일을 늘려가 보고 싶어서.

오늘의 추신은 이렇게 적었어.

내가 감탄했던 노랫말이지

'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오 그대여.

눈물이 없어도 꽃은 피고 낙엽은 지네

내 남은 그리움 세월에 띄우고 잠이 드네 꿈을 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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