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에 대한 오해
우리가 "안다"라고 할 때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요?
때론 우리는 "나 그거 알아" 와 같이 쉽게 말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보죠. 쉽게 "나 라면 끓일 줄 알아" 라고 말한다고 하죠. 그런데 라면 봉지 뒤에 쓰인 라면 끓이는 법을 봤다고 해서 라면을 끓일 줄 "안다" 고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단 한 번이라도 냄비에 물을 넣고, 가스 불을 켜고, 물이 끓으면 라면과 스프를 넣고 라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은 경험이 없다면, 라면을 끓일 줄 "안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그냥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끓이는 라면부터 시작해서 계란을 넣을 건지, 파를 넣을 건지, 면은 얼마나 익힐 건지에 따라 "안다"는 것에 수 많은 깊이가 더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안다"는 정의는 결국 경험의 축적에서 옵니다. 더 많이 경험하고 적게 경험할 수는 있어도 경험을 했다는 대 전제는 충족되어야 하지요.
경험이 충분이 축적되면 단순히 "아는" 수준을 넘어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 갑니다.
다시 라면의 예로 들어간다면, 몇 번 끓여 본 경험으로는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다른 라면의 레시피에서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그냥 물과 스프만 넣고 라면을 끓여 본 사람이 계란을 넣으면 갑자기 훅 줄어 든 국물의 양에 당황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파와 양파를 추가로 넣으면, 야채에서 나온 물에 국물이 밍밍해 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한 뒤에는 라면에 된장도 좀 풀어 보고, 버섯도 넣고, 훈제 고기도 넣고 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준다고 해도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짧게 말하면 "응용"이 되는 거죠.
이렇게 응용을 하기 위해서는 라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라면을 오래 끓이면 왜 면이 퉁퉁 불어 버리는지, 물을 적게 넣으면 왜 국물이 짠지, 계란을 넣으면 왜 국물이 줄어 드는지,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면서 다른 방법을 써도 라면의 맛이 어떻게 될 지 대충 예상할 수가 있게 되는 거죠. 그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경험+경험=이해=응용력
물론, "안다"라는 말이 언어학적으로는 굉장히 함의적으로 쓰이고 있기는 합니다. "분수를 안다", "법을 안다", "무슨 말인지 안다", "나를 천사로 안다", "내가 알 바 아니다", 등등...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안다"라는 말은 어떤 것의 원리를 "깨닫다"의 측면에서 "안다"라고 제한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위해서 무엇은가를 보거나 듣거나 반복하는 것을 "배운다"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나 요즘 영어 배우고 있어" 라고 할 때, 누구도 그 사람이 영어를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알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 사람이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국 알게 될 것이라고 믿죠. 하지만 "나 영어할 줄 알아" 라고 할 때는 자신의 의사를 영어를 통해 표현할 수 있음을 뜻하는 거죠. 물론 과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은 고작 몇 마디 할 줄 아는 것으로 "영어할 줄 안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때론 우리말에 생략이 들어가기도 하니까요. 너무 파고 들어가면 복잡하니까 생략은 최소화 한다고 하고 진행 할게요.
어쨌든,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상태를 우리는 "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응용"이 어느 정도 되는 상태이지요. 즉, 배운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직접이든 간접이든 간에 "경험"을 반복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 경험이라는 것이 또 재미 있습니다.
"경험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가 일어날 때 자아를 개입시켜 기억하게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자신이 함께하지 않은 기억은 "경험"이 아닙니다. "직접 경험"이나 "간접 경험"같은 단어도 있죠? 여기서 "직접"이란 내가 물리적으로 함께 하는 것을 말하고, "간접"이란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자아가 개입되어 가상이나마 본인의 상황인 것 처럼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아"가 개입이 되었다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포인트 입니다. "자아"가 개입되지 않은 단순한 정보의 습득은 기억으로 자리 잡기가 대단히 힘이 듭니다. 예를 들어, 국제 뉴스를 본다고 합시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에서 점심으로 "오크라" 샐러드를 먹었다고 합니다. 뉴스가 여기에서 끝난다고 해 보죠. 당신은 "오크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건 당신의 삶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이걸 기억할 수 있을까요? 이건 마치 당신이 매일 지나가는 개울 다리를 건널 때 개울 물에서 물방울이 좀 튀었다와 같은 정보입니다.
그런데 그 뉴스에 한 마디가 더 붙는다고 해 보죠. "오크라는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식물로 항산화 작용과 항암작용을 하고, 섬유소도 많아 건강에 대단히 좋다고 합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중년이라면 이 정보를 그냥 흘릴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건강에 전혀 관심이 없는 팔팔한 청소년들이라면 이 또한 전혀 가치가 없는 정보일 수 있겠지요.
이렇게 똑같은 정보라고 하더라도 자신과 관련되는 순간, 그 기억의 효율은 극적으로 올라갑니다.
관심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일 겁니다. 한자로 관심은 이렇게 씁니다. 關心(관계할 관, 마음 심).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마음에 관계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이란 결국 자아의 깊숙한 곳이고, 나와 "깊게" 관련된 정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어떤 방식이던지, 내게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이 정보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우주에 대해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은하 간 여행에 대한 이론을 듣는다고 할 때, 집중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판단은 우리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관심이 있다, 없다를 결정 짓는 것 또한 기존에 경험이나 기억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또 경험이 있다고 해도 무조건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내가 어떠한 것에 대해 이미 수많은 경험으로 인해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와 비슷한 정보가 나에게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내기에는 너무 미비하다면, 관심이 생기기는 힘이 듭니다. 관련은 있지만, 느끼지는 못한다고나 할까요? "관"은 있지만, "심"이 없는 겁니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조금 뜬금없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우리 뇌세포의 형성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뇌신경망(腦神經網)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뇌에 있는 신경인 뉴런(뇌세포-Neuron)은 아주 간단하게 동작합니다. 위의 그림과 같이 중간에 있는 길쭉한 구조를 통해 전기 신호가 그냥 쭉! 흘러가는 구조 입니다. (Linkedin 에 제가 뇌 신경망과 인공지능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참조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여러 가지 다른 종류가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이렇게 간단한 구조의 뉴런이 전기 신호를 전달하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 결과로 작은 단백질 덩어리(이끼섬유/과립세포)를 여기 저기에 저장하면서 기억이라는 것을 형성합니다. 그 단백질 덩어리 자체도 복잡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아요. 그저 또다른 형태의 뉴런일 뿐입니다.
위에 그려진 뇌 세포는 수많은 다른 종류의 뇌세포 중 가장 유명한 모양일 뿐입니다. 이 중에는 빠른 뇌세포도 있고, 느린 뇌세포도 있어요. 이렇게 많은 뇌세포가 위 그림에서 머리카락처럼 삐져나온 부분의 끝과 연결되기도 하고, 중간쯤에서 연결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연결이 된 다음에 바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고, 마치 축전기 처럼, 충/방전을 반복하지요. 충전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전달되지 않아요.
그럼 여기까지 본 것만 해도 수많은 뇌세포의 연결이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감이 잡힐 겁니다. 네. 그 경우의 수가 바로 우리가 가진 기억이자, 우리의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구조가 계속적으로 변화합니다. 우리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면, 그에 대한 기억이 형성이 되는데, 뇌에서의 기억은 컴퓨터에서의 저장과는 달리 회로를 바꿈으로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서 "안녕하세요"라는 문장을 저장한다고 하면, 통으로 "안녕하세요"를 저장하고, 불러올 때도 그렇게 통으로 불러 옵니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안녕" 과 "하세요"에 관련된 각기 다른 연결을 그와 연관된 수많은 연결에서 가져와 올바르게 "안녕하세요"라는 출력을 만들어 냅니다. 얼핏 보면 컴퓨터에 비해 굉장히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컴퓨터에서는 "인사"라고 정확한 명령을 주어야 "안녕하세요"라고 답하는 데 비해 인간은 "어른을 만날 때", "아이를 만날 때", "기분이 좋을 때", "무례하게 답하고 싶을 때", "존중하고 싶을 때" 등등 수많은 상황에 대한 적당한 답을 내 놓습니다. 그렇기에 컴퓨터에 비해 유연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답을 내 놓기도 하지요.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뇌는 때로는 기존의 기억을 "재구성"합니다. 오래된 기억이 미화되고, 여럿이서 같은 경험을 해도 다르게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억이란 기존의 뇌 신경망을 연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뇌파로 기억을 읽어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지요. 왜냐하면 기억이란 개인적인 경험의 총합이며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예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관심이 없거나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뉴런 자체가 비슷한 자극에 대해서는 전류를 흘려보내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뉴런은 자체적으로 업무시간이 있는데, 업무 시간을 끝내고 나면 쉬어 줘야 하거든요. 이건 뇌가 쉰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뇌는 24시간 일해요. 그런데 그게 말하자면, '회사는 24시간 일한다'와 같은 얘기예요. 회사는 일하지만 그 회사에 속한 직원은 출퇴근을 하잖아요? 그리고 한 사람의 직원이 너무 과중한 업무에 치이면 Burn-out 증후군이 오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하잖아요? 마찬가지죠. 뉴런 하나 하나는 일을 좀 하고 나면 쉬어야 해요. 만일 계속 같은 뉴런이 사용되게 되면, 이 뉴런은 점점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지게 되어요. 제 생각으로는 이건 뇌의 최적화 전략 중 하나입니다. 앞에 언급한 대로 뇌의 기억은 단 하나의 흐름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빠른 흐름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빠른 흐름을 가진 연결이라고 하더라도 많이 사용하게 되면 느려지니, 결국 다른 흐름을 통해 갈 수 밖에 없는 거지요. 하나의 흐름이 느려져서 다른 흐름으로 가게 될 때, 그 다른 흐름이 끝까지 이어져 있다면, 그 흐름 또한 빨리 결론에 이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직 이어져 있지 않다면 "잡생각"으로 이어지게 될 거예요. 이는 새롭게 만들어 진 뇌의 전류의 흐름이 인근의 기억들을 자극하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자극 된 뇌세포는 기존에 미리 "이해"된 "기억"에 접근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새로 자극 된 뇌세포는 새로운 "기억"을 생성하고, 그 "기억"에 접근하기 위한 노드를 형성합니다. 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뭐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제 생각으로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전류들이 뇌 내의 이온 물질을 자극하여 인근의 뇌세포 끝단 줄기를 끌어오는 것 같아요.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를 잡아 당기듯이 +전극과 - 전극은 서로를 잡아당기거든요. 정전기가 그 예이지요.
하여간 이렇게 피곤해진 뉴런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기능을 회복하게 됩니다. 점점 느려지는 현상을 "역치"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내성"과 같은 말이예요. 기억하세요. 이 "역치"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역치"는 새로운 신경망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기존에 만들어 진 신경망 흐름 주변에 새로운 망을 만들고, 만일 한 번 잘 못 연결된 망이라고 하더라도( 잘못 이해한 것이 있더라도) 이렇게 대체되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메카니즘으로 인해 기억은 점점 단단해지고, 그 단단해 진 기억 노드를 통해 우리는 "이해"라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어떤 현상을 보고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이전에 모르던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면, 즉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 "이해"하게 되면, 기존의 "기억"과 배치되는 새로운 증거를 접하지 않는 한은 기존의 흐름을 그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의 흐름이 피곤해 져도 이미 만들어진 다른 흐름이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빠르게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 단계에 다다르면, 뇌는 더이상 새로운 신경망을 만들지 않습니다.
즉, 말 그대로 "머리가 굳어" 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굳어"버린 신경망은 비슷한 경험에 대해 굉장히 빠른 결론을 내려 줌으로서, 우리를 "전문가"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문가"로서 얻어 진 수많은 성공의 경험은 이 흐름에 긍정적인 기억을 더욱 많이 연결하면서 다른 흐름으로 가는 길을 막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해"는 수 많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간의 연결이 중심이 되는 기억에 연결될 때 일어 납니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해도, 그 경험이 결국 중심 기억에 연결되지 못하면 그 흐름은 서서히 잊혀져 갑니다. 이는 우리의 뇌가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릴 적에 경험한 기억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느낌적인 느낌"이 마치 애니메이션 Inside-Out 에 나오는 Core-memory 로 남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Core memory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간에, 이 기억에 접근하는 것은 가장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식인 듯 하고( 뇌세포는 생후 3년동안 뇌의 기본 구조를 생성하는데, 이 기본 구조를 core-memory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 이렇게 연결된 것이 결국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core-memory는 자아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생후 3년동안의 기억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거죠.
위에서 언급한 대로 뇌는 기존의 구조(기억)을 재사용 하는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계속 사용된다면, 그 흐름과 관계된 혹은 인접한 뇌세포의 연결이 유지가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떤 기억의 인근 지역에 오랫동안 접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연결되었던 시냅스 들이 점차 다른 자리를 찾아 갑니다. 뇌 세포 하나가 다른 것과 연결되는 것이 즉각적인 기억의 수정으로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오랜 시간동안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 기억세포와 연결된 연결은 앏디 얇아 지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끊어지겠죠.
우리는 이것을 "망각"이라고 부릅니다. "망각" 전 단계로 "기억 미화"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이와 연결되었던 "고통" 관련 연결이 오랜 시간동안 접근되지 않아서 다른 뇌세포로 연결이 이동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 됩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일환으로 고통에 접근하지 않으니 이런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아이의 배움과 어른의 배움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달라야 하는 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