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치열의 저녁

by 서담


요즘 날씨는 참 애매하다. 에어컨을 켜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창문만 열기엔 땀이 줄줄 흐른다. 더위가 본격화되기 전, 초여름의 끈적한 저녁. 지인들과의 약속에서 고르게 된 메뉴는 뜻밖에도 ‘추어탕’이었다.


어릴 적엔 진득한 국물과 생소한 맛이 영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런 내게 추어탕을 다시 보게 해준 건, 어느 날 지인의 단골집에서였다. “진짜 맛있는 데서 한 번만 먹어봐.” 반신반의하며 간 그날 이후, 내 추어탕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깊고 진한 국물, 부추와 들깨의 어우러짐, 구수한 솥밥과 누룽지, 맛깔스러운 김치까지. 한국인의 소울푸드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보통은 한겨울, 손끝이 시릴 때 생각나는 음식이지만, 오늘처럼 더운 날에 먹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의외로 괜찮았다. 국물을 들이켜며 얼굴은 더워졌지만, 속은 시원하게 풀렸다. 그야말로 이열치열.


뜨끈한 국물을 떠먹으며 몸속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맛은 있지만 칼로리만 높고 영양가는 부족한 음식이 넘쳐나는 요즘, 이런 음식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몸에 좋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한 그릇. 더위를 잠시 잊게 해준 오늘 저녁의 추어탕이다.


오늘 함께한 분들은 나보다 열 살쯤 많은 언니들이다.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하신 분들이라 자연스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배도 든든하고, 마음도 든든한 저녁. 이열치열의 추어탕만큼이나, 사람의 온기도 깊이 배어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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