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진료실에서의 글은 두 글쓰의 충돌을 쉽게 보여준다
1. 진료실에서 글을 쓸 시간이 나는 경우는 환자가 없거나 글을 쓸 감성이 넘쳤기에.
2. 글을 쓰면서 두 자아가 충돌한다.
3. 다른 전문가와 자꾸 비교가 된다.
4. 나는 뭔가에서 아마추어가 되는게 낯선것 같다.
5. 신기하게도 알아줬으면 한다.
위의 이유로 진료실에서의 글은 극과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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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들어가는 일
글쓰기는 물이다. 처음엔 숨이 막힌다.
진료실 창밖으로 해운대가 보인다. 스무 해 동안 마른 땅에서 살았다. 진단명이라는 단단한 지반, 처방전이라는 정해진 답. 거기서는 숨쉬기가 쉬웠다.
어느 날, 써야 했다. 환자가 없는 오후. 혹은 무언가 넘쳐 글로 토해내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순간. 펜을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내 안에 두 개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하나는 "이게 의학적으로 정확한가?"를 묻는다.
다른 하나는 "그냥 써. 완벽하지 않아도 돼"라고 속삭인다.
의학교육에서는 이를 '정체성 불일치'라는 딱딱한 이름으로 부른다. 자기 개념의 화해할 수 없는 측면들이 충돌할 때의 불쾌한 내적 경험.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깊은 물속에서 방향을 잃은 느낌이었다.
비교라는 깊은 곳
"다른 전문가와 자꾸 비교가 된다."
남궁인의 책을 읽는다. 서현의 에세이를 본다. 백승완의 글을 만난다. 그들은 의사이면서 작가다. 나는? 그저 진료실에서 어설픈 글을 끄적이는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도 실패도 아니다. 가장 큰 비참함은 비교에서 나온다고. 맞다. 비교할 때마다 더 깊이 가라앉는다. 비교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나 천천히 깨닫는다. 비교를 없앨 수는 없지만, 다르게 볼 수는 있다는 것을. "저 의사는 어떻게 저렇게 쓸까?"가 "저 기법을 내 글에 어떻게 녹일까?"로 바뀐다. "나는 왜 못 쓸까?"가 "내 글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로 전환된다.
비교는 여전히 한다. 다만 가라앉는 돌이 아닌, 떠오르는 부력으로 쓴다.
아마추어의 공포, 아마추어의 자유
"나는 뭔가에서 아마추어가 되는게 낯선것 같다."
핵심이다. 스무 해 동안 전문가였다. 환자가 오면 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약을 처방해야 하는지. 하지만 백지 앞에서는 초보다. 이 낯섦이 견딜 수 없다.
심리학에서는 '역량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부른다. 한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다른 분야에서 초보가 되기를 거부한다고. 하지만 아마추어의 어원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돈이나 명성이 아닌 순수한 사랑으로 하는 일.
의학은 내 직업이지만, 글쓰기는 내 사랑일 수 있다. 아마추어에게는 자유가 있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쓰고 싶어서 쓰는 것.
전문가와 아마추어. 나는 둘 다 선택한다. 진료실에서는 전문가로, 글 앞에서는 아마추어로.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내 방식이다.
인정욕구라는 부끄러운 진실
"신기하게도 알아줬으면 한다."
부끄럽다. 하지만 솔직하다. 스무 해 동안 환자의 인정을 받으며 살았다. "선생님 덕분에 좋아졌어요"라는 말에 기뻐했다. 이제는 독자에게도 그런 인정을 받고 싶다.
인정욕구는 양날의 검이다. 더 나은 글을 쓰려는 동력이 되기도, 타인의 평가에 매달리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지 않되, 그것에 매몰되지도 않는 것.
나는 인정욕구를 인정한다. 동시에 그것과 적당한 거리를 둔다. 마치 류마티스 환자가 염증과 함께 살아가듯, 나도 이 욕구와 함께 산다. 완전히 제거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적절히 관리할 뿐이다.
극과 극, 그 사이의 글쓰기
진료실에서 쓴 글은 극과 극을 오간다.
때로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라는 차가운 문장을 쓴다. 때로는 "할머니의 구부러진 손가락이 내 마음을 찢는다"는 뜨거운 문장을 쓴다.
왜 중간이 없을까? 전문가 모드와 인간 모드 사이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훈이 보여주듯, 답은 '절제된 열정'에 있다. 감정은 뜨겁되 표현은 담백하게.
이제는 쓴다. "관절이 아프면 마음도 함께 아픕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아니 둘 다인 문장을. 의학적 정확성과 인간적 따뜻함이 만나는 지점. 아직 찾아가는 중이다.
물속에서 숨쉬는 법
이제 안다. 익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호흡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엔 발목까지 담근다. 개인 일기부터 시작한다. 그다음 무릎까지. 가족에게 보여준다. 허리까지 들어가 의료진 커뮤니티에 공유한다. 가슴까지 잠겨 환자 교육용 글을 쓴다. 마침내 잠수한다. 일반 대중을 위한 글을 쓴다.
진료실에 글쓰기 공간을 만든다. 진료용 컴퓨터와 별도로. 좋아하는 펜, 특별한 노트를 준비한다. 글쓰기 전 차 한 잔의 여유를 둔다. "지금부터는 의사가 아닌 나"라는 조용한 주문을 건다.
두 자아는 대립하지 않는다. 통합된다. "전문가인 내가 인간적으로 쓰는 글", "인간적인 내가 전문성을 담아 쓰는 글". 둘 다 나다.
그 사이가 나다
매일 조금씩 익숙해진다. 물의 온도를 안다. 파도의 리듬을 읽는다. 때로는 가라앉고, 때로는 떠오른다. 그래도 쓴다.
진료실에서의 글쓰기가 "극과 극"이 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내 안에 풍부한 감정과 깊은 전문성이 공존한다는 증거다. 이제는 그 역동성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활용한다.
"신기하게도 알아줬으면 한다"는 마음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글쓰기의 원동력이고, 독자와 소통하려는 진심이니까.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계속 쓴다. 진료실과 글쓰기 사이에서. 의사와 작가 사이에서.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이에서.
그 사이가 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