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딤

강직성척추염

by 이지선

# 무딤 - 강직성 척추염


무디다

척추뼈와 관절이 무디다

굳어가는 마디마디가 둔탁하게 소리 낸다


나는 무뎠던가

새벽의 고통이

병이 없는 삶을 살지 않아

그저 그런 듯했지만


쇳물에 담고 두드리는 고통에

무뎌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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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해주지 않은 말



스무 살 허리가 아프기 시작할 때

성장통이라 했다

서른 살 목이 돌아가지 않을 때

컴퓨터 때문이라 했다

사십 살 다리까지 저릴 때

운동 부족이라 했다


굳어가는 척추는 조금씩 굽어가고

딱딱해진 관절은 서서히 각도를 잃는다

무뎠다고 생각한 나는

사실 너무 아픈 것에

스스로를 길들인 것이었다


아침마다 몸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아무도 모른다

뻣뻣한 등뼈를 펴가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의 무게를


허리를 숙일 수 없어

떨어진 물건을 주워 올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볼 수 없어

운전할 때마다 위험을 감수한다

굳어진 목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온전히 바라보기 어렵다


그렇게 몸이 굳어갈 때

나는 식물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움직일 수 없는 뿌리

고개 돌릴 수 없는 줄기

하지만 식물도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향해 기울어진다


척추는 무디지만

나는 예민하다

날씨가 바뀌기 하루 전부터

몸이 먼저 안다

비가 올 것을 관절이


나는 이제 마흔이다

굳어가는 뼈와 예민한 마음 사이에서

아픔과 체념 사이에서

그래도 매일 아침

딱딱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척추가 무뎌진다고

내가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뼈가 굽는다고

마음까지 굽는 것은 아니다


스무 해를 아프며 배운 것은

몸이 굳어도 마음은 살아있다는

무딘 척추 위의 날카로운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