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단서

연쇄 장기 습격 사건

by 이지선

탐정의 독백

"의학은 범죄 수사와 같다. 범인은 항상 증거를 남기지만, 탐정이 그것을 알아볼 때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2024년 9월 15일, 비 오는 월요일 오후.

닥터 김은 빗소리를 들으며 다음 환자의 차트를 펼쳤다. 그는 아직 몰랐다. 자신이 5년간 이어진 연쇄 범죄의 마지막 수사관이 될 거라는 것을.


현장에 도착한 탐정

"6개월째 돌고 있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48세 최준혁이 진료실에 들어섰다.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두 눈이 먼저 보였다.

닥터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처음부터 들어볼까요? 모든 것을."

최준혁이 낡은 수첩을 꺼냈다. 거기엔 5년간의 병원 기록이 빼곡했다.


연쇄 범죄의 타임라인

닥터는 화이트보드에 시간표를 그렸다.


2019년 7월 15일 - 첫 번째 습격 장소: 췌장

수법: 급성 염증, 원인 불명

목격자: 응급실 당직의

증거: CK 상승, 스테로이드에 일시 항복

2020년 3월 - 첫 번째 재습격

장소: 동일 (췌장)

특이사항: 범인이 돌아왔다

2023년 10월 - 두 번째 습격

장소: 이하선 (침샘)

수법: 무통성 부종

특이사항: 항생제에 무반응

2024년 3월 - 대담한 동시다발 공격

장소: 안구 + 갑상선

현재 상태: 진행 중


"보통 범죄자는 수법을 바꾸지 않는데..."

닥터가 중얼거렸다.

"이 범인은 매번 다른 곳을, 다른 방식으로 공격했군요."


기존 용의자 라인업

닥터는 류마티스 교과서적인 용의자들을 소환했다.


용의자 1호: 쇼그렌 알리바이: 구강건조 (-), 안구건조 (-), Anti-SSA/SSB (-) "석방하세요. 무죄입니다."

용의자 2호: GPA (혈관염) 알리바이: 신장 정상, 폐 정상, ANCA (-) "이 친구도 아니군요."

용의자 3호: 사르코이드증 알리바이: ACE 정상, 폐문 림프절 정상 "역시 배제."

모든 알려진 용의자들이 무죄였다.


프로파일링

닥터는 범인의 특성을 분석했다.

[범인 프로파일]

- 장기 선호: 분비선 (췌장, 침샘, 눈물샘)

- 공격 패턴: 시간차 공격 (년 단위)

- 특징: 스테로이드에 일시 굴복

- 성향: 재발을 즐김

- 증거: 자가항체를 남기지 않음 (영리함)


"자가항체를 남기지 않는다..."

닥터는 펜을 놓았다. 이건 평범한 자가면역 범죄자가 아니다.


숨겨진 증거를 찾아서

"일반적인 방법으론 안 되겠군요."

닥터는 더 깊이 파기로 했다.

"면역글로불린 전체 프로파일링을 해봅시다."

간호사가 물었다. "IgG, IgA, IgM이요?"

"그것뿐만 아니라... IgG 서브클래스까지. 1, 2, 3, 4 전부요."

비싼 검사였다. 하지만 직감이 왔다.


결정적 단서

일주일 후, 검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IgG4가 850입니다!"

"뭐라고요?"

닥터는 벌떡 일어났다. 정상의 6배가 넘는 수치.

'잡았다!'


범인의 정체

닥터는 급히 국제 수배 명단(의학 데이터베이스)을 뒤졌다.

범죄자 이름: IgG4-RD (IgG4 Related Disease)

특징:

- 1990년대 첫 발견 (일본)

- 2010년대에야 국제 지명수배

- 여러 장기를 시간차로 공격

- 특수한 병리 소견 (소용돌이 섬유화)

- IgG4라는 지문을 남김

"너였구나..."


과거 사건의 재구성

닥터는 5년간의 사건을 다시 정리했다.

"2019년, 첫 번째 의사는 췌장염만 봤어요. 범인의 이름을 몰랐죠."

"2023년, 이비인후과는 침샘만 봤고..."

"2024년, 안과는 눈만 봤고..."

"각각은 퍼즐의 한 조각만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최준혁이 울먹였다. "그럼 처음부터 알 수 있었다는..."

"아니요." 닥터가 고개를 저었다.

"2019년엔 한 조각뿐이었어요. 퍼즐을 맞출 수 없었죠. 범인도 그걸 알고 있었고요."


체포 작전

"이제 범인을 제압할 차례입니다."

프레드니솔론 40mg. 범인을 제압할 첫 번째 무기.

"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이 범인은 재발의 달인이거든요."

2주 후.

"선생님, 눈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범인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추격전

하지만 닥터는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일 뿐.

"메토트렉세이트 추가합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범인과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스테로이드 감량 → 범인의 재등장 조짐 → 다시 증량

"이놈... 정말 끈질기네요."


공범의 발견

6개월 후 정기 추적.

"선생님, 콩팥 수치가..."

새로운 장기가 공격받기 시작했다.

"젠장, 신장까지..."

IgG4-RD는 공범을 데려왔다. 신장을 공격하는 또 다른 얼굴.

"리툭시맙을 써야겠어요. 특수부대 투입입니다."


종신형

1년 후.

"완치는... 안 되는 거죠?"

최준혁이 담담하게 물었다.

닥터는 정직하게 답했다.

"이 범인은 종신형입니다. 가석방은 가능하지만, 항상 감시해야 해요."

하지만 최준혁은 웃었다.

"그래도 이제 범인이 누군지 아니까... 싸울 수 있잖아요."


Epilogue. 탐정의 일기

2025년 9월 15일

오늘로 IgG4-RD 사건을 맡은 지 1년.

범인은 여전히 갇혀 있지만, 언제든 탈출을 시도한다.

5년간 5명의 의사가 각자 한 조각씩 가지고 있던 퍼즐. 나는 운 좋게도 마지막 조각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어디선가 또 다른 IgG4-RD가 첫 번째 장기를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그 환자가 5년을 떠돌기 전에 누군가 범인을 잡기를 바란다.


[사건 종결 보고서]

사건명: 5년간의 연쇄 장기 습격 사건

범인: IgG4-RD

피해 장기: 췌장(2019) → 침샘(2023) → 안구/갑상선(2024) → 신장(2025)

현재 상태: 구금 중 (약물로 제압)

특이사항: 종신 감시 필요


"때로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증거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딘 환자와 포기하지 않은 의사가 만났을 때,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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