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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지 Aug 31. 2024

사랑하는 아빠께

아빠랑 나는 거의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빠 딸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성격이나 성향, 심지어는 여행이나 음식 취향까지도 달라서 모두가 만족하는 가족 여행을 가기란 쉽지 않았다.


해산물을 좋아하셔서 여행을 가거나 가족끼리 외식을 하면 바다 음식부터 찾아보시는 아빠랑 바다향이 입에 맞지 않아서 차라리 육류를 선호하는 나.

해외여행을 가서도 아침 댓바람부터 이곳저곳 유명한 관광지는 모두 방문해 보고 귀국하셔야 하는 아빠랑 다르게 한 동네에서 가고 싶은 곳만 들르면서 유유자적하게 여유를 즐기고 싶은 나.

새로운 음식점에 들어가면 음식점 사장님께 이 가게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등을 친근하게 여쭤보며 친해지고 싶어 하시는 아빠랑 가족끼리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래서 매번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진짜 너무 다르다'며 장난치고 웃고는 했다.


아빠와 정반대인 나는 당연히 엄마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거, 차랑 커피를 좋아해서 하루에 몇 잔이고 마시는 거, 하다못해 이상형이라든지 같은 브랜드의 감자칩을 좋아하는 것까지.

딸들은 엄마를 닮지 않았어도 커가면서 엄마의 모습이 나온다고 하던가.

나중엔 엄마의 삶이 내 몇십 년 뒤의 미래와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내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이 부분 부분 보이기 시작했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매번 메모장에 기록해 두는 습관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에는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것, 그리고 가족을 내 가치 중 최우선순위로 두는 것까지.


그래서 더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빠가 사회 초년생 때 메모장을 들고 다녔던 건 어떤 마음에서였을지.

주말 이틀을 운동에 모두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어떤 심정에서였을지.

어떤 계기로 모든 걸 제치고 가족에게 헌신하게 되셨을지.


물론 표면으로 아빠와 똑같이 보이는 모습들이 나와 같은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아는 아빠라면 나와 같은 마음이셨을 것 같아 어딘가 위안이 되면서도 아빠께 조용한 위로를 건네드리고 싶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중년의 아빠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는,

어쩌면 나도 입맛이 바뀌어 어패류를 잘 먹게 되고, 가게 사장님과 여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여행 간 김에 모든 곳을 구경하고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중년의 나는 여든의 아빠를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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