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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티 Nov 05. 2023

내 분수만큼 하는 육아

90년대생 엄마의 첫 육아일기

내게 100일의 기적은 다름 아닌 통잠의 기적이었다. 그전에도 신생아 시기를 벗어나자마자 7~8 시간씩 밤에 통잠을 자는 아기이긴 했지만 100일쯤 되니 확실히 길게 자는 게 느껴진다. 밤중수유도 거의 사라져서 확실히 육아가 이전보다 편해졌다. 아기가 통잠을 자니 엄마도 통잠을 자게 된다. 잠만 잘 자도 컨디션 회복이 확실히 되는 것 같다.


아기와 함께 생활한 지도 3개월쯤 되니 나도 이제 엄마 티가 좀 나는 것 같다. 분유 타는 모습, 젖병 씻는 모습, 기저귀 가는 모습에서 이전보다 능숙해진 나 자신이 신기하다. 아기도 이제 어느덧 7kg을 넘어 8kg을 향해가고 있다. 주수를 다 채우고도 2.7kg로 작게 태어난 아기지만 이제는 신생아 시절이 무색할 만큼 정말 자이언트 베이비가 되었다.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 대로 아기를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한 요즘이다. 잘 먹기만 해도 어찌나 예쁜지! 물론 잘 안 먹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잘 먹고 쑥쑥 자라는 중이라 안심이 된다.


잘 자고 잘 먹는 것만으로도 제 몫의 효도를 톡톡히 하고 있는 118일의 아가. 심지어 황금똥을 싸도 칭찬을 받으니 가끔은 너의 삶이 부럽기까지 하구나! 지금 이 시절만큼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시절이 있을까. 이 시절은 너의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 될 거야. 엄마가 예쁘게 잘 가꾸어 줄게.


내가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아기는 잘 자라고 있다. 신생아 초기의 막연한 걱정과 불안, 호르몬의 장난, 급변하는 나의 삶과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다. 걱정 속에 살아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너무나도 평안하다. 이런 시간이 올 줄 알았다면 그때 조금만 불안해할걸. 그렇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지금 내가 처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내일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지금껏 내가 해온 육아를 돌이켜 보면 내 분수만큼 해온 것 같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분량만큼만 애써왔다. (그런 것 치고는 몇 번의 내적 위기가 있었지만.. ) 내가 너무 지친 나머지 모유를 오래 못 줄 것 같아서 얼른 단유를 했었고, 내가 잠을 못 자면 아기를 잘 못 돌볼 것 같아 신생아 시기부터 통잠을 위해 수면교육을 나름대로 해왔다. 집이 어질러져 있는 걸 잘 못 봐서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익혔으며, 내가 할 것도 놓치지 않고 하느라 아기와 못 놀아 준 것에 대해 미안해서 시간의 양을 질로 바꾸어서 아기랑 밀도 있게 놀아주었다. 엄마인 나를 중심으로 관점을 조금만 바꾸니 육아가 한결 편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가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3개월이었다.


그 사이 아기는 눈이 제법 또렷해졌고, 뱃살이 볼록하게 나왔다. 이젠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엄마 손가락을 잡을 수 있으며, 고개도 빳빳이 가눈다. 잘 때는 대체로 눕히면 바로 곯아떨어지지만 종종 엄마의 뽀뽀 세례를 받으며 엄마의 손가락을 꼭 붙잡고 자고 싶어 하기도 한다.


다 자고 일어났다는 소리를 낑낑하고 낼 때 방문을 살포시 열어보면 엄마의 얼굴을 확인하고 활짝 웃어주는 아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의 웃음을 마주하려고 엄마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


지금도 내 옆에서 작은 숨소리를 내면서 잠든 아가야. 엄마가 조금 더 잘 견디고, 잘 참고 인내하는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대신 엄마의 분수만큼 해내는 육아로 너에게 최선을 다할게. 너의 삶이 귀하듯 너라는 예쁜 아기를 낳은 엄마의 삶도 귀하단다. 앞으로도 엄마가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만큼 너를 더 소중히 여겨줄 수 있을 거야.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너에게 최선을 다할게. 사랑해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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