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언젠간 노력의 가치가 폄하되었다. 노력을 '노오력'이라는 '꼰대'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서점에는 느리고 쉬엄쉬엄 천천히 사는 힐링 에세이들이 즐비하다. 그만큼 우리는 많이 지쳤고, 이러한 현상은 너무 흔해져 '번아웃증후군'이라고 명명되기도 하다.
나도 한 때 번아웃으로 몇년은 소모된 삶을 산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었다. 그렇게 꿈꾸던 대학교에 합격한 이후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기는 커녕 스스로 더 채찍질하며 살았다. 합격하고 나니 목표를 잃었다. '목표'에 쓸데없이 첨가물을 넣어 지나치게 부풀린 탓에 막상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그만큼 나에게 쾌감을 줄만한 목표를 찾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대학교 때 그렇게 많은 삽질을 했다. 무수히 많은 동아리 활동, 봉사, 버스킹 공연, 어학연수, 여행, 등을 닥치는대로 집어 삼켰다. 내 자신이 소모되는 것을 모른 채...
그 이후 나는 대학 생활을 '너무 노력하면 안된다'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쉬어가며 적당히 사는 삶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꼈다. 나의 길을 잘 선택한 곳에서의 노력은 가치있다는 것이다. 노력을 해야하는 분야가 있고, 포기해야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를 봤다. 한동안 좋아했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삶이 담긴 다큐멘터리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처럼 표현욕구를 품은 사람으로서, 가슴을 크게 울렸다. 그녀는 정상까지 올라오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대학생 때처럼 했던 삽질인 아닌, 자기만의 색을 강화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노력이 아닌, 사회가 부여한 목표를 달성해야하는 노력이 아닌 , 자기 삶을 살아가는 노력말이다.
진작에 나의 색을 펼치려고 노력할껄. 아니 노력은 했지만 대부분의 노력은 남들의 꿈이었던 것 같다.
후회가 막강했다. 그러다가 나는 7년 전 미국 교환학생 시절 때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적어도 그 때는 무엇을 노력해야하는지 조금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난 이렇게 썼다: "난 나의 진로를 찾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찾고 있다. 근데 이상하게 자꾸 음악과 예술 쪽으로 일들이 기울어져가고 있다."
난 이미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이 길로 노력을 하면 되는 건데, 안타깝게도 다시 한국으로 와서는 기존 습관으로 돌아갔다. 진로를 변경할 때는 적당히 바꾸면 안되고 혁명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한국에 들어와서 결국 취업한 곳은 채널 A라는 방송국의 방송작가였다. 소심하게 진로 변경한 것이다. 어떻게든 과학이라는 내 전공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삶을 바꾸려면 제대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예컨대 과학을 전공했고 연극을 좋아한다고 '과학을 연극으로 가르치기'나 '과학을 책이 아닌 활동으로 학습하기' 뭐 이렇게 하는 것은 어설프고 자칫하다가는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그냥 연기해 그냥!
노력은 아름다운 가치다. 노력을 안하는 방치하는 삶은 결국 나를 학대하는 삶이다. 삶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 같다. 대신, 남들의 평가에 휩쓸려서 도착한 곳에서의 노력이 아닌.... 내 색을 낼 수 있는 곳에서의 노력. 하루하루 충실히 나의 길을 나아가는 , 마치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