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겪는 이 모든 일들이, 어쩌면 누군가의 시험이라면 어땠을까 하고.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도 통과하고 있는 중인 어떤 종류의 시험 말이다.
하나의 문제가 끝나면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고,
그 문제들은 어떤 건 너무 명확해서 아프고,
어떤 건 너무 불명확해서 아프다.
그러니까 결국엔 어떤면으로도 아플 수밖에 없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나를 시험하고 있다.
나를 위한 시험일지라도, 나는 그 사람의 의도가
언제 포기할까, 언제 무너질까, 하며
그 순간들을 지켜보며 내게 또 다른 문제지를 내미는 것만 같다.
어릴 적, 나는 늘 누군가에게 받는 칭찬을 원했다.
‘넌, 나름 잘 살아오고 있어.‘ 그 말 한마디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내 인생에서 언제나 문제의 정답처럼 숨어 있었다.
언제 맞출 수 있을지 모르는 채, 매일을 반복하며 풀이를 써내려갔다.
엄마의 술에 젖은 눈으로 나를 볼때도,
아빠의 나를 위한 거짓말에도,
나는 정답을 찾기 위해 풀이를 썼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오답을 적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늘 현재만을 위한 정답을 생각하며
잘못된 답을 적어갔다.
그렇게 나는 하나둘 시험지를 모았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신에게 물었다.
“왜, 왜 저만 이런 시험을 계속 보는거에요?”
대답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신은 침묵으로 존재했고, 나는 그 침묵을 해석해야했다.
신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신을 변명으로 삼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사람을 본다.
아무 일 없이 자란것만 같고, 그래서 맑은 웃음을 지으며 언제나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비교를 하며 나도 모르게 나의 과거를 읊으며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받은 문제들이 어떠면 내가 감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주어진게 아닐까 하고.
신이 있다면, 그는 나의 한계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아는 존재.
그러니 그는 내가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양만큼만 시련을 낸다.
어쩌면 그게 시험이 아니라, 내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정말 포기하고 싶었고,
어떤 날은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이 상황이
나는 아직 이 시험을 보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들은 말한다.
“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괜찮아질거야.”
나는 이제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괜찮아지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으면 어떤가, 괜찮지 않아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아는데.
정답이 없어도 계속 시험을 푸는 사람도 존재하는데.
그 산 증거가 나라고 자랑스레 얘기할수 있다.
어쩌면 신은, 그런 사람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틀려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
혼자여도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문제를 더 푼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계속 쓰고 있으니까.
신은, 시험지를 찢지 않는다.
그러니 나도, 끝까지 풀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