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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May 29. 2024

치매일기 종료

happy end - 2024.05.27

나는 언젠가 이 삶을 떠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내 육체는 썩어서 空(공)이 되어야 한다. "사대가 흩어지니 육신은 공하도다." 사대란 곧 흙, 물, 불, 바람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생에서 내가 맺었던 인연들도 부서질 것이다.


인도에서는 쉰 살의 나이를 '산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표현한다. 이제 오십 년 동안 세속의 삶을 누렸으니 그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진리와 마음의 평화를 찾을 때가 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순 살은 그들에게 '산으로 가는 나이'다.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 류시화




폭풍 같은 4월이 지나고 햇살이 맑은 5월 내내 남편과 온 동네를 걸었다. 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주위의 모든 길들, 달맞이길, 와우산, 고흐의 길, 해운대와 송정으로 이어지는 철길을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위축된 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반파된 아킬레스는 여전히 통증이 지속되었지만 걸어야만 했다. 걸으면서 지구에 같이 여행 온 나무와 바람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머리로 이 병의 모든 위험을 생각하고 우울할 시간에 우리는 5월 화사한 날씨의 보호아래 걸었다.


5월 14일에 pet ct와 뇌파검사를 위해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딸이 휴가를 내고 병원에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1시간 이사의 러시아워를 뚫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벌써 지쳤다. 검사는 오후지만 지방에서는 1시간 이상의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긴장한 남편의 손을 잡고 더 긴장한 내가 달랜다. 오늘은 검사만 하는 날이니 마음을 편히 갖자고. 나를 의지하는 남편 앞에서 나는 정말로 믿음직스러워야 했다. 그래야 환자가 덜 불안하니 나만 믿으라고 했다. 수서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검찰청을 지나니 정치구호를 붙이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부럽다. 그들의 집에는 아픈 사람이 없나 보다.


병원문을 여는 순간부터 엄청난 기가 빨려나간다. 나의 걱정과 다른 사람들의 불안이 합쳐진 곳이 병원이라 그곳을 다녀오면 몹시 피곤하다. 들어서는 순간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내 그릇은 생각보다 적고 큰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안되니 부디 은총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했다. 뇌파 검사실에서 1시간 빨리 검사가 가능하다고 연락이 와서 1시에 뇌파검사부터 했다. 분명 우리끼리 할 수 있다고 딸에게 휴가를 안 써도 된다고 말했지만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20분쯤 걸리고 검사로 머리에 바른 약품 때문에 샴푸실에서 머리를 감았다. 딸이 아빠 머리를 감기며 나누는 대화가 또 눈물샘을 건드렸다. 주책스럽게 눈물이 아무 때나 예고도 없이 나온다.


점심을 먹고 태어나서 처음 pet ct실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었다. 정맥 주사를 맞고 1시간 30분 지난 다음 20여 분간 뇌를 촬영한다고 했다. 정맥주사는 잠시 맞고 1시간 반을  지하 1층 커피숍에서 셋이 대화를 나누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머리 촬영 시에 움직이면 안 된다고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설명만 반복했다. 검사를 끝내고 수서역까지 택시로 1시간, 지하철은 40분이었다. 딸을 따라 지하철을 타러 걷고 또 걸었다. 역시 익숙한 곳이 살기가 제일 편한 곳이다. 길을 모르니 딸만 따라갔다. 우리 딸이 이렇게 든든한 존재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5월 27일은 pet ct, 뇌파, 혈액 검사를 종합하여 진단이 내려지는 날이었다. 주말에 아들이 부산에 와서 의젓하게 부모를 안심시켰다. 본인도 걱정이 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가족들이 힘을 합쳐서 헤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또 눈물이 났다. 내일 서울 갈 일이 걱정이 되었지만 하나씩 준비하며 마음을 편히 가지려 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지난 한 달 동안 남편의 변화를 기록한 종이와 질문도 정리하여 의사 선생님 보기 편하게 출력했다. 좌측 뇌에 인지기능과 상관없는 뇌수막종 진표의뢰서도 챙기고 차에서 먹을 약도 준비하고 9시에 누우니 우리 둘 다 잠이 오지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김밥을 샀다. 소풍처럼 생각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 가는데 날씨도 좋고 김밥도 먹으면 소풍이다. 긍정적 기운과 단어를 생각했다. 그게 그날 아침 내게 내린 축복이었다.


수서역에 도착하니 병원 가는 셔틀버스 타려는 줄이 길었다. 삼성병원과 세브란스 병원은 셔틀을 운행했다. 택시를 타니 40분이 걸렸다. 나도 모르게 피곤했는지 잠시 졸았다. 오늘은 딸에게 병원을 같이 가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눈물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결과를 혼자 들을 자신도 없었다. 4월 인지검사와 뇌 MRI에서 남편은 안 좋은 소식만 들었다. 초로기 치매, 즉 65 세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 진행속도도 빠르고 발생부위, 즉 뇌의 위축된 부위가 전두업과 측두엽이라 전두측두엽 치매가 의심된다고 했다. 우리가 아는 알츠하이머 치매와 달리 약이 잘 듣지 않고 처방할 약도 다르지만 느낌으로는 쓸 수 있는 약이 별로 없다는 말씀 같았고 진행되는 것 말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물론 PET CT와 뇌파검사 등으로 종합하여 판단을 하지만 MRI상으로 좌측뇌의 위축은 경도가 아니라고 하셨다.


12시에 진료인데 1시간 지연되었다. 의료대란에 1시간이 지연되어도 진료를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불안, 초조, 긴장, 의도적인 호흡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며칠 전부터 평온함과 감사함이 들었다. 아들이 무심코 제주에 내려와 아빠의 인지상태를 꼼꼼히 질문한 것도, 평소 잔소리를 많이 안 하던 내가 그날 유독 남편에게 잔소리를 오래 해서 아들이 이상하다고 느끼게 만든 것도, 일단 병원에 가서 확인하자고 했는데 남편이 순순히 응한 것도, 제주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을 때 예약이 아주 힘들었지만 결국 그다음 주에 예약이 된 것도, 4월 병원에서 추가검사를 하러 다시 오라고 했을 때 제주에 가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간 것도, 차가 없다고 친구들이 병원에 데려다준 것도 모두 다 감사했다.


1시에 차례가 되어 간호사에게 보호자 혼자서 먼저 들어가겠다고 미리 얘기했다. 남편의 긴장을 잘 알았기에 나쁜 소식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먼저 선생님께 안 좋은 소식은 보호자에게만 따로 얘기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께서 안 좋은 소식 없다고 환자도 들어오라고 하여 딸의 손을 잡고 남편이 들어왔다. 뇌 위축의 심각성과 달리 PET CT상의 아밀로이드, 즉 뇌의 기능을 방해하는 찌꺼기의 분포가 정상이었고 뇌파 검사도 정상, 혈액검사의 이상유전자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런 경우는 그간 꾸준히 섭취한 알코올로 인한 뇌손상으로 보기 때문에 꾸준한 운동과 사회생활, 인지활동의 강화를 통해 개선의 여지가 있다며 내년에 인지기능검사를 다시 해보면 분명 향상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하셨다. 진료실 들어갈 때 참았던 눈물이 놀래서 자꾸만 새어 나왔다. 나에게는 기적이었다. 전두측두엽 치매만 아니길, 제발 지금 상태만 유지하기를 기도하였는데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남편과 악수하며 지금처럼 많이 운동하고 노력하시라고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감사했다. 나와서 믿을 수가 없어 간호사분께 이걸 믿어도 되냐고 했더니 믿으시는 게 좋겠다고 웃었다.


우리는 기적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하였다. 긴장을 풀린 나는 울고 남편은 웃고 딸은 소고기 먹자고 했다. 우리의 5월 27일은 소풍이었다. 그리고 우리 삶에 가장 큰 기적이었다. 아픈 사람에게 내밀어준 지인들의 따뜻한 모든 손길에 감사하고 그들 가정에 힘든 일이 생길 때 나도 꼭 도와주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그러한 손길이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일이 있을 때 꼭 노력해야겠다는 감사와 결심이 저절로 생겼다. 잔인한 4월에서 감사한 5월로 바뀌며 다시 한번 내 머리와 우리 가정 위에서 보이지 않는 날개로 우리를 보호해 주신 따뜻한 그분의그 분의 손길에 무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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