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함께 하는 길 2026.03.12. 방문
날이 풀리니 요즘 부쩍 심심해하는 친정엄마와 다시 성지순례 약속을 잡았다.
날씨를 체크하고 비소식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더니 초미세먼지 소식이 마음을 조금 무겁게 했다.
다행히 오전에 안 좋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니 조금씩 좋아졌다.
덩달아 무거웠단 우리의 마음도 가벼워진다.
세 번째 성지순례는 친정엄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묻어있는 동네로 잡았다.
우리는 아침 출근시간을 피해 충정로역에서 만났다.
친정엄마와 나는, 각자 한 번씩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수고는 있었지만
다행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성당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친정엄마는 현재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 몇 번 성지순례길로 약현성당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사시간을 미리 체크하여 미사까지도 드렸다 한다.
오늘처럼 걸어서 성당을 오니, 차로 이동하여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며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쁜 눈이다.
성당까지 올라가는 입구는 두 군데가 있었다. 입구에서 성당까지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우리는 정문으로 들어가 나올 때는 후문으로 나왔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아쉽게도 성당 안이 개방되지 않은 채 꽉 잠겨 있었다.
약현성당은 친정엄마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의 외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성당이다.
그러니 자신의 딸과 함께 이곳에 와 맞이하는 기분이 얼마나 이상했으리라 친정엄마의
얼굴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성당 안이 개방되지 않은 아쉬움보다도 성당 건물 외벽 둘레를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의 기분 좋음이 더 컸으리라.
친정엄마와 나는 틈틈이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손이 떨려 사진을 찍을 때 힘들어하시지만,
나는 이 시간 또한 그냥 흐르게 두고 싶지 않아 늘 친정엄마를 괴롭힌다.
친정엄마를 한번 찍어드리고 본인이 찍힌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번에는 내가 같은 포즈로 서 있을 테니
찍어주라 요청한다.
그러면 친정엄마는 있는 힘을 다해 왼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오른손 손가락은 찍는 버튼 앞에서
내가 찍어주라 말하기를 기다린다.
역시나 약현성당 앞에서도 우리는 같은 포즈를 취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사진 속에 남긴다.
나중에 나중에 아주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 시간이 그리워지면 나는 또 이 사진을 꺼내 들 것이다.
친정엄마는 약현성당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꾸 소환해 나에게 들려준다.
살던 집에서 성당에 오는 길을 설명하며 본인은 후문으로 다녔다 했다.
족히 60년은 넘게 흐른 기억을 소환해 내느라 친정엄마는 온 힘을 쏟는다.
그 순간만큼은 조잘조잘 말 잘하는 국민학교 어린이가 되어 있다.
친정엄마는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자신이 살던 곳까지도 구경을 가고 싶은 눈치다.
조금은 힘이 들더라도 조금씩 걸어서 동네구경을 하고 싶지만 섣불리 딸에게 가자고 주장하지 못하신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어떤 날 아침 일찍부터 만나 시간의 여유를 두고 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친정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 우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을 등 뒤로 하고 친정엄마가 졸업한 국민학교까지 함께 걸었다.
그렇게 성지순례 길 위에서 친정엄마의 기억과 추억의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
친정엄마는 집으로 오는 길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내가 또 언제 와 보겠냐... 너랑 같이 오니까 올 수 있었지...
그 말이 멈칫하게 한다.
그 말이 눈물짓게 한다.
[순례를 마치며]
세 번째 성지순례 길이다.
약현성당을 시작으로 친정엄마가 어릴 적 살던 동네까지 걸었다.
30년을 살던 동네구경을 40년이 넘어 다시 하며 추억을 꺼내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