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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Apr 04. 2022

고통에 대한 단상

삶에 아픔이 많을수록

그 아픔을 견뎌낼수록

영혼은 맑아짐을 느낀다.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는

이런 같잖은 말들에 빈정 상한다.


영혼의 맑음이고 뭐고

당장 진통제 한 알의 평안이 천국이다.


그렇게 아프고 견디고

아프고 견디고를 반복하다 보니

몸은 노쇠해졌지만

영혼은 더욱 맑아졌음을 느낀다.


고통은

신을 만나러 가는 속도가

KTX급이다.


고통만큼 빠르게

신의 이름을 부르짖게 하는 것이 없다.


아무리 교양이 넘치고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아도

오장육부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 앞에서

고상하고 우아하기 힘들다.


체면이고 뭐고

우악스럽게 신께 부르짖는다.


내 짐이 너무 무겁노라 하소연도 해봤다가

왜 나한테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냐고 원망도 해보았다가

깜깜무소식인 신을 이내 부정하다가

그래도 기댈 언덕은 신 밖에 없음에

다시 또 제자리로 오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잠이 오지 않아 또 새벽에 깨어있는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영혼은 맑고 청량함을 느낀다.


내 인생에 고통이 없었다면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지금 이 순간의 영혼의 맑음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몸은 점점 노쇠해가고 있지만

정신은 더 건강해져가고 있는 듯하다.


상처 많은 조개가 진주를 품듯

아마도 고통이 주는 선물인가 보다.


진부한 표현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리고 또다시 지옥 같은 고통이 찾아오면

영혼의 맑음 어쩌고 나불거리던

내 주둥이가 부끄러워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통이 있었기에 내 영혼이 성숙했음을

신 앞에 고백해보련다.

 


* 이미지 출처 : https://m.blog.naver.com/infern015/22106597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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