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정말 엉뚱한 곳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나라님들이 별의별 정책을 동원해도 이를 비웃는 듯이 서울의 아파트 값은 끝없이 오르는 중이었다. 좁디좁은 땅 위에 많이도 지어 놓은 탓에 혹여 위에 켜켜이 쌓인 집의 주인들이 땅을 나눠 가질 일이 생긴다면 두 발 딛고 설 공간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아주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적도 몇 번 있으나, 정말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나라님들은 연일 고강도 세무 조사니 뭐니 하는 발표를 해 댔는데, 나라님들 자체가 세무조사 대상인 경우가 많아 말뿐인 잔치로 그치기가 일쑤였고, 가진 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으니 돈은 계속 아파트 투자로 흘러 들어왔다. 시멘트 덩어리가 좀 동원되면 수십 배 남는 장사를 건설회사들이 놓칠 리도 없었다.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도시를 물려주기 위해 무분별한 주택 건설을 자제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던 정치인들도 이제 그런 소리가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차라리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빌 공자’ 空약이 더 약발은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지어지는 아파트는 그야말로 지어지는 족족 실제로 필요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손에 팔려 나갔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도 멀어져 가기만 했다.
식구들 먹여 살리려면 내 좋은 머리로 의대를 갔어야 했던 나는 한심하게도 기초과학을 선택했다. 박봉에도 흰 가운이 노래지게 연구하던 내가 이 허접한 연구소에서 인생을 전환할 대박을 칠 만한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기 란 불가능한 게 당연했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이 물질도 아무 쓸모 없었다. 한 줌을 뭉쳐 놓으면 그저 공중에서 약 십 센티미터 정도 동동 떠 있는 특성이 있었다. 게임만 죽어라 하는 어린 아들놈이 생각나 한 줌 집에 가져가 비행기 천장 어디쯤 붙여 놓으니 그럴듯하게 동동 떠다닌다. 마치 실제로 날아다니는 듯했다. 그러나, 역시 아들놈은 오분 관심을 보인 뒤엔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게임 화면에서 더 높이 날아다니는 물체들에 더 화려한 공격을 가고 있다. 더 재미있어 하는 것이 이해도 갔다.
집안에 굴러 다니는 아들의 여타 다른 장난감들과 달리 몇 달 동안 집안에 ‘날아’ 다니는 장난감에 이상한 눈길을 준건 내 아내였다.
“자기, 이게 뭐 야? 이거 용준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건데 어떻게 동동 떠있어?”
“어, 그거? 이제 안 가지고 놀지? 재활용 통에 버릴까?”
또 한 소리 듣겠구나 싶어서 아내가 원함 직한 대화를 이어 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신기하잖아, 이렇게 날아 다닌다는 게.”
사실 매우 신기한 일이긴 했다. 그리고 평생을 돈벌이엔 전혀 능력이 없던 내 머릿속이 이상하게 회전했다. ‘이거 우리 연구소 프로젝트도 아니고, 혼자 딴짓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니까 내가 권리 주장하고 장난감 회사에 팔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거기까지였다. 장난감 비행기와 동동 떠다니는 물질을 한 줌 더 들고 장난감 회사에 찾아가 나름은 큰 돈을 벌었다고 기뻐했는데, 내 능력은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장난감 회사는 그 물질을 대량생산해서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는 비행기 모형에 들어갈 크기로 만들더니, 급기야는 농축 과정을 개발하여 운송수단에 활용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름 큰 돈을 안겨줄 때는 물고 빨아주던 내 아내는 “병신!” 소리를 연발하며 나를 내 쫓을 기세다. 그 좋은 걸 발견해 놓고 애들 장난감이나 만들었으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쌌다. 반면, 내 발견을 헐 값에 사간 회사 주가는 엄청나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개인형 비행 운송수단을 만드는 회사로 순식간에 변신했다. 이들은 부양력을 조절하는 기술을 만들어 수직이착륙 형태의 개인형 비행기를 만들었다.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내가 개발한 물질의 부양력은 수 년간 유지된다고 하니 회사는 수 년 마다 이 물질을 새로 팔아먹을 수 있는 셈이었다. 정부는 신산업이라며 관련 법규를 긴급히 개정하고 하늘에 가상 도로를 만들어 개인형 비행 운송수단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아다닐 수 있게 했다. 상행과 하행의 고도를 달리하고 속도를 제한했다. 추진동력은 내연기관보다는 전기엔진이 주류를 이뤘다. 주로는 건물들을 피하기 위해 지상도로 상부로 운행하도록 법규가 정비 되었다. 면허 체계 정비도 속도를 냈다. 나는 내 발견으로 인해 몇 년 만에 영화에서나 나오던 비행체들이 날아 다니는 게 신기하기만 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아내는 땅을 치며 억울해하고 나를 구박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 개인형 비행기의 판매가 생각보다 저조했다. 기술의 특성상 수직 이착륙 외에는 비행을 시작하고 종료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런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신축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개인 지상 주차 공간을 확보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매를 망설인 것이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역시 완전 부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좁은 지하 주차장을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다. 주차를 위한 지상운행용으로 바퀴를 장착한 모델이 개발되었지만 역시 인기가 없었다. 반면, 단독주택이 주거 형태의 주류를 이루는 국가들에서는 엄청난 판매 호조를 보였다.
이 신개념 교통수단이 불러온 또 다른 변화는 출퇴근, 등하교 시간의 변화이다. 서울 외곽에서 출근시간에 서울로 몰리던 차량이 하늘로 분산되면서 지상 교통체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긍정적인 면도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는 개인형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동시간이 극도로 줄었다는 변화가 매우 컸다. 두 세시간 교통체증을 뚫고 지상 출근을 하던 서울 외곽 거주자들은 십 여분 만에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거리라는 개념이 서울-부산 간 쯤으로 바뀌는 정도의 변화였다. 처음엔 이 긍정적인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을 예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실로 교통의 혁명이라 할 만한 이런 변화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엉뚱하게도 서울의 아파트값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에 고급스런 주차장이 몇 층 씩 꽁꽁 감춰진 고가 신축 고층 아파트일수록 주차가 불편했다. 또한, 굳이 회사나 학교 또는 학원 인근에 살 필요가 없게 된 부유한 사람들이 주차도 편하고 개인의 삶이 더 보장된 외곽의 개인 주택을 급격히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발맞춰 인재 영입을 위한 회사들, 고객유치를 위한 상업시설들과 우수 학생유치를 위한 대학들의 발 빠른 대응도 놀라웠다. 빽빽하던 주변 건물을 몇 개 사들여 부수고 이착륙을 위한 평지 주차 시설을 마련한 곳은 점차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그렇게 대응하지 못한 곳은 지상 자동차를 이용하는 고객들 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럴 수 록 서울의 고가 아파트부터 엄청난 속도의 가격하락이 시작되었다. 마치 도미노 넘어가듯 연쇄적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기에 묶여 있던 금융자본의 부실은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살던 변두리의 거지 같은 아파트는 이미 크게 떨어질 것도 없었지만, 월급을 다 들이 부어야만 감당이 되던 전세 값이 내린 점은 매우 기뻤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제는 그야 말로 엉망이 되었다.
자살자가 속출했다. 은행들이 부실해지자 상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문제들이 불거졌다. 수 십 년째 아파트 폭락설을 주장하던 자들은 ‘이것 보라!’며 득세를 했지만, 부동산에 얽힌 현대 금융상품의 복잡한 부채와 부실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아무도 내 놓지 못했다. 장난감 회사에서 개인형 비행 운송수단 회사로 변신한 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었고, 이 기술을 선도하게 된 우리나라에게는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제가 파탄 난 체, 비행체들이 동동 떠다니는 폐허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노벨상 논의가 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아마도 노벨 경제학상 단체에서 크게 반대를 할 것이다.
이 기술로 그야말로 떼돈을 번 친절한 회장님은 최고급 개인형 비행기를 누추한 우리 동네 공터로 보내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가는 길, 아니 가는 하늘 내내 내 아내는 나를 구박했다. 아내는 이 비행체만 보면 울화가 치미는 듯했고 그 화살은 여지없이 나에게 향했다. 얼핏 창 밖을 내다보니 어차피 까마득해서 뛰어내리기에 오히려 별로 겁이 나지 않는 높이였다. 나는 비행중에 문이 절대 열리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는 이 개인형 비행 운송수단의 안전장치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