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유럽여행
새로운 상황이 생긴다면 위험신호다.
새로운 상황을 핑계삼은 합법적(이건 필요하니까! 사야 되는 상황이니까!) 쇼핑의 문이 열린다.
첫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 나는 거의 한 달 전부터 필요한 것들이 수시로 떠올라 저녁마다 핸드폰을 들고 신나는 쇼핑을 했다.
'파리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니까 크로스백을 사야지! 날카로운 칼에도 잘리지 않는 방검 원단이어야 해. 또 고리형 잠금장치도 있는 걸로, RFID(여권, 신용카드 복제방지) 기능은 무조건 있어야지!'
'유럽에는 비가 자주 온다니까 비옷도 하나 챙겨야 하고, 우산도 가볍고 작은 걸로 사야겠네!'
'숙소 침대에 빈대가 있을지도 몰라. 진드기 기피제도 챙기고, 베개는 베개커버를 준비야지'
하나를 사면,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나며 '사야지병'이 걸린 것처럼 쇼핑을 했는데 그중 최강 쇼핑 아이템은 역시나 옷이었다.
고작 6박 7일 일정이었는데 매일 입을 옷에 대한 코디를 미리 수첩에 메모를 하고(나는 패셔니스타가 아니다. 옷을 잘 입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무채색과 무난함을 추구하는 직장인 착장일 뿐이다), 기억하기 쉽게 그림도 그리면서 하루하루의 착장을 골라보는 데 뭔가 부족하다.
'부족해? 부족하면 사야지~ 모처럼 여행 가는 건데 사진도 예쁘게 찍고, 기분도 좋으려면 새 옷을 입어야지'
괜히 파리지앵 스타일을 검색해 보고 이런 스타일, 저런 스타일을 살펴보고 내게 없는 옷들을 구매해 본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짐가방은 158cm(길이+너비+높이), 23kg.
내가 짐가방을 들면 휘청거릴 무게였다.
그땐 몰랐다. 계단을 오르내릴 일도 있고, 기차를 타서 캐리어를 짐칸에 넣어야 될 일도 있고, 차 트렁크에 짐을 넣고 뺄 일도 많다는 것을.
여행을 다니며 나는 자주 혼잣말을 했다.
'어휴, 촌스러워. 누가 이렇게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어... 어깨 빠지겠네'
그렇게 내 첫 유럽여행은 무거운 캐리어로 기억된다.
TV에서 기안 84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찍으러 출국할 때 크로스백 하나 챙긴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너무 자유로워 보였다.
너무나 상반된 나의 옷에 대한 욕망의 무게와 그의 옷에 대한 무욕의 무게.
이번 쇼핑금지령을 통해 옷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나면 나도 기안 84처럼 가벼운 가방 하나 달랑 메고 7일 정도 여행은 훌쩍 떠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