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족히 십수 년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그 촌구석 와이파이 데이터의 절반가량을 좋은 집 소개하는 유튜브 시청으로 소비하기도 했다. 물론 그럴싸한 집이 나오면 나를 불러 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니, 이것도 좀 봐봐!" 하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수도 없이 하던 어느 날, 그것도 새벽. 난 아내의 재촉에 거의 익숙해진 반응으로 영혼 없는 고갯짓을 다시 한 번 한 것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번쩍, 내 눈에 들어온 그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당 가득 화초가 단을 지어 색동저고리를 걸쳤고, 그 안쪽 서까래 집 한 칸과 맞은 편 벽난로 집은 살림과 글쓰기를 겸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모습을 갖췄으니 말이다. 천우신조. 그날 따라 내 아침 일정은 모임 예약이라고는 없이 고스란히 비어 있었길래 내가 먼저 청했다. "이 집 한번 보러 가보자!"
그렇게 성사된 여행에, 우리는 다행스레 일착. 느긋한 인상의 주인 양반이 우리를 맞이하여 차를 한 잔 즐기는 사이, 두 사람이 더 다녀갔다. 내어 놓은 지 하루 만에 세 탐방객이 다녀가고, 우리가 계약금을 건 후에도 누구는 자기가 웃돈을 줄 테니 자기에게 넘길 수 없느냐고 거듭 부탁을 하더라나. 우리가 집을 둘러보기보다 주인과의 담소에 더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이 다행인지 모른다. 바깥 차양 아래서 차를 마시고, 그간 이곳에서 지낸 경험이 어떠셨던가를 궁금해 한 것이, 돈 더 주겠다는 일숫돈 가방 든 양반의 말에 넘어가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니 말이다.
그렇게 그날, 우리를 처음 맞이한 이 집은, 알고 보니 전에 한 화가의 소유였다. 아직도 작품활동을 하는 그 화가의 미술관으로, 그녀의 지인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차를 마시고 꽃을 즐긴 덕분에, 이 집의 이름은 아직 그 미술관 이름을 딴 "푸른 옷소매"다. 우리가 8월 중순에야 이 집으로 오면서 여름 내내 공감했던 이름이다.
그런데 지난가을, 집 앞에 펼쳐진 논은 황금색으로, 그 뒤로 우거진 숲은 점점 울긋불긋해지더니, 때아닌 11월 중순, 지난밤 내린 폭설로는 천지가 흰색, 재색으로 거듭났다. 밤사이 눈 뭉치는 쉬지 않고 내려, 가지마다 저렇게 잎을 대신한 눈송이로 두툼하게 입었으니 그 소매가 지난 계절의 화려함보다 못하지 않다.
처음 방문한 우리를 보고 주인은 놀란 얼굴로 물었었다. "어, 아직 이런 델 찾아들 나이는 아니신 듯한데...". 윗집, 아랫집, 논 건너 맞은 편까지, 죄다 지긋한 연세에 자연을 벗하고 싶은 이들로 마을을 이룬 덕분에, 우리는 젊은 새내기로 비쳤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새로운 계절의 초입에 들어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단풍이 다 진 것도 아니려니와 겨울이라고 하기는 아직 이른데, 때아닌 폭설이 안긴 이 아침의 낯선 설렘은, 잎이 다 진다 한들 겨우내 헐벗은 가지로만 있으란 법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흰 소매가 주는 단순한 색조의 매력만큼이나, 계절이든 인생이든 이제는 화려한 경력이나 사연으로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시절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