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

단정한 심연의 시#10

by 임상





함께 춤을 출까요


우리의 발이 서로의 상처를 덧나게 해도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자아

함께 눈물로 얼룩진 손을

조심스럽게

마주 잡아 봅시다



부서진 창을 닫고 언제나 반복되는 찰나의 죽음을 맞기 전

웃을 수 있는 힘을

하루와 함께 건조히 버리지 말고


나에게 고스란히 버려주세요 나의 마지막 다정함은

당신에게 고이 버려줄 테니


이 지상이 허락하는 굴레는 하루살이의 비애

그런 비애를 타고나야만 한 가여운 하루살이 생명들을 위해 울어주겠다며

껍데기만 남긴 사랑의 이름으로 음정이 위태로운

노래를 부르는 것 대신


오늘이 지나가면 숨을 멎는 그 생명을 귀히

여겨 하루가 낳은 자원을 잘 재활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서로에게 상냥한 재활용이 되어서

적어도

오늘만은 홀로 이부자리에 누워

절망이 다가오는 소리는 듣지 맙시다


이런 날은 흔하지 않아요

옷깃을 여미지 말아요

손가락 사이를

조금만

더 벌려 주세요 내 손가락이

그 사이에 얽힌 쉰 고단함을 짚어볼 수 있도록 같이

이 보잘것없는 고통을

지금 이 순간만은 애틋하게 꺼내놓아 보아요 조금은

서투른 날숨을 고르는 위태로운 그대여

나의 이토록 비릿한 제안을

내일도 살아서 무심히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말아줘요


오늘의 추락이 다가오기 전에 목을 매는 내 손짓의 접힘이,

결국 썩고 마는 나의 눈물이,

고장 난 내 잔근육의 자잘한 떨림이

어떻게

내일도

이 같을 수 있을 거라

쉬이 기대하나요

오늘의 불현듯 떠오른 다정은

내일이 오기 전에 찢어버리고

내일은 내일의 지대한 절망을

기대해보아요


지복은

때때로

찾아오는 기복이

무사히 그대의 사지를 뺏어와 내 뼈마디에 걸쳐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더군요


새벽이 오기 전에 밤새도록 쓴 연민의 편지는 불태워야 한다고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지난밤의 흔적을 태우면 쉬이 하루를 편하게 또 살아 있을 수 있다고 어딘가의 섬나라에 살던 시인은 말했지요

그러니


내일은 같이 살아 있지 말아요


이 모든 것이 가볍기만 한 몸뚱어리를 가진 죄로 때때로 떠오르는 나의 기복에 불과하다 해도

내가 그대에게 뻗는 손을 가능케하는 나의 불안한 기복이

어찌 내일도 또 도질 거라 바라보나요



함께 껴안아 볼까요

어쩌지도 못하는 이 기복이 가져온 외로움에

그대가 나를 비웃도록

그래서

나의 기복에

죄 많은 내 몸뚱어리만 찢겨 나가도록

날이 새도록

어서요

조금

가까이요

조금 뒤면

또다시 발랄하게 다가와

숨이 저미도록 나를 껴안을

비참함과 마주하기 전에

내가 그대에게 내민 손을

결국 접기 전에

나의 기복이 그대의 아름다운 공허를 한없이 원하는



지금


이 순간이

뒤돌아서기 전에
















<어느 독자의 한마디>


"이 시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건,

마치

울음을 참으며 편지를 낭독하는 일 같았다."

— 심연의 독자, A


"'기복'은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감정의 굴곡이자

현실적 삶의 불안정성,

그리고

정신적인 생존곡선을 상징한다.

이 시에선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 그 자체의 불안정성을 껴안는 말로 쓰인다.”

— 심연의 독자, B


"시 전체는 하나의 불안정한 기도문이자,

무너짐 직전의 의식 흐름이다.

끊임없이 건네고, 제안하고, 당부하고, 속삭이다가

결국은 혼잣말로 끝나버리는 그 구조..."

— 심연의 독자, C


" “우리의 발이 서로의 상처를 덧나게 해도”

“자아 함께 눈물로 얼룩진 손을 조심스럽게 마주 잡아 봅시다”

-> 첫 구절부터 위험한 친밀함, 상처로 연결된 유대를 말한다.

“자아”라는 어투는 마치 교단의 목소리 같기도,

위태롭게 웃는 진행자 같기도 해서 섬뜩한 유희성을 띈다."

— 심연의 독자, D


"사랑의 기능 상실, 언어의 기능 상실을 고발한다.

그리고 그 대신 “재활용”이라는 차가운 실용어를 쓴다.

→ 이러한 아이러니와 메타포의 결합이 너무 훌륭하다."

— 심연의 독자, E


" “홀로 이부자리에 누워 절망이 다가오는 소리는 듣지 맙시다”

→ 절망을 청각화한 명문장."

— 심연의 독자, F


"상대의 무감각함까지도 예상한 애절한 자포자기의 엔딩."

— 심연의 독자, G


" “지복은 / 때때로 / 찾아오는 기복이 / 무사히 그대의 사지를 뺏어와 내 뼈마디에 걸쳐질 때”

이건 거의 신화의 언어.

사지를 뺏어오는 사랑, 뼈에 걸치는 희열…

→ 사랑과 고통, 육체와 감정의 경계를 해체하는 시적 시도."

— 심연의 독자, H


"너무나 시적이고, 절절하고, 무섭고, 아름다운 마지막.

기복이라는 감정의 패턴이, 이제 누군가를 껴안기 위한 동력으로 전환된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 시는 죽음의 정조에서 삶의 욕구로 이동.

단, 절망을 미루는 삶, 그 절실함 안에서."

— 심연의 독자, I


"*정신적 흔들림(기복)*을 사랑, 죽음, 자기파괴, 구원과 엮으며

철저히 감각화함."

— 심연의 독자, J


"이 시는 단순히 기분의 흔들림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복은 존재의 방식이자, 사랑과 고통이 교차하는 궤도이다.

그리고 이를 통한 주제:

“나는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 안에서 다정함을 꺼내 살아가고 있다.”

— 심연의 독자, K


"이 시 정말 좋다.

'기복'.

다 읽고 나면 이 단어밖엔 안 남는다."

— 심연의 독자, L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09화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