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생각했다면 한 번쯤 읽어주시길 바라며
올겨울 참 많은 자살시도가 있었다. 어떤 이는 찬란하게 빛나는 인생이라며 책까지 냈던데, 누군가에겐 오늘 하루가 지옥이고 사라지고픈 현실이었던가 보다. 현실을 비극으로 끝을 내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말 그대로 자살을 시도까지만 한다. 제아무리 용자라도 어딘가로 뛰어내려서 자신을 살인한다는 게 말처럼 쉽겠는가.
자살 현장을 다니며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자살도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겨울철 물에 뛰어든 여인은 추워서 살고 싶었다며 119에 신고를 했다. 반면에 은둔형 외톨이의 한 남성은 어깨 높이에 박힌 못에 넥타이를 걸어 목을 매고 자살을 하였다. 다리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살았을 텐데, 죽음의 결단과 의지가 얼마나 대단하던지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지가 없어서 죽음을 택하는 거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의지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오늘도 잠에서 깨어났다. 자살은 강렬한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한번 살아보는 건 어떨까?
모질었던 인생,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만큼 추한 과거, 회복할 수 없는 관계, 눈 뜨면 심장을 파고드는 깊은 상처가 남아있겠지만, 그 강한 의지로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그 의지로 일주일을 살고 한 달을 지내보면 한 번쯤 웃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봄을 만나면 쑥스럽게 올라오는 벚꽃봉우리를 보고, 빗물에 꽃잎들이 씻겨 나갈 때 마음에 상처 하나쯤 같이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알바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알바자리 하나 구해서 일 년을 살아보면, 집에서 가까운 맛집 서너 군데 정도 알아두고 월급날 한 번씩 다녀보면 살고 싶진 않더라도 죽을 이유가 몇 가지 잊히지 않을까.
그 마음들 내가 다 헤아릴 수 없고 이해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나도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눈물로 잠이 들고 깨어나던 때가 있었다. 현실을 피해 도망간 이불속엔 잘나고 잘 사는 친구들의 SNS소식으로 가득했다. 왜 착하게만 살았던 나에게 불행이 찾아오느냐며 하늘을 향해 욕을 한 적도 있고, 가족들의 사진을 끌어안고 며칠을 운 적도 있다. 그렇게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대엔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그냥 그 모든 걸 끌어안은 채로 하루를 더 사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나 도움도 없었다. 슬픔은 슬픔인 채 놔두고 오롯이 하루를 더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이루었고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 보니 인생에 답은 없는 것 같았다.
인생이란 삶에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가며, 그 점들이 선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었다. 몇 번의 점을 찍어 운 좋게 평안에 이르는 것이 아니었다. 기쁨과 슬픔을 교차로 경험하며 어디로 끝이 날지 모르는 곳으로 이어가는 선이었다. 미완성도 이런 미완성이 없는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문득 인생을 추억해 보니 점들로 이루어진 선은 한 폭의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살 신고가 들어오면 방화문 개방도구를 가지고 문 앞에 섰다. 문 손잡이를 까고 전자잠금쇠를 쾅쾅 내려치며, 나의 이 답답하고 다급한 마음은 늘 할 말만 쌓아두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죽음의 문턱에 서있다면 그 의지로 딱 일주일만 살아보시라. 그 결단과 의지를 물감 삼아 인생을 마음껏 색칠하며 살아보시라. 골이 깊을수록 산도 더 멋진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니, 속는 셈 치고 이 소방관의 말을 한 번만 들어보시라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