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I Can’t Recall'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I Can’t Recall'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 이후의 인간을 노래한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I Can't Recall (윤형렬)
이 노래에서 세계는 자세한 설명 없이 송두리채 바뀐다.
밤이 춥지 않고, 하늘이 유난히 가까우며, 별이 갑자기 많아 보인다. 감정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패배감과 실수, 자기 자신에 대한 오래된 판단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기억이 사라진 게 아니라, 기억이 지배하던 질서가 무너진 것이다.
때문에 시드니 칼튼의 “기억 안 나”라는 말은 망각이라기보다, 이제까지의 인생이 더 이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이다. 술에 취한 게 아니라, 처음으로 깨어난 상태에서 부르는 이 노래의 핵심은 결국, 고백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다.
“때가 왔어.”
이 문장은 로맨틱하지 않다. 되돌아갈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이후의 선택들은 모두 이 밤에 빚지고 있다. 훗날의 희생조차 우발적이지 않다. 이미 한 번, 자신을 벗어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뮤지컬 <두 도시의 이야기>의 넘버 'I Can’t Recall'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순간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더 이상 자기만의 것으로 두지 않기로 한 순간을 기록한다.
사람의 삶을 뒤흔드는 것은 대개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이렇게 한 번 세계가 달라 보이던 밤이다.
그리고 그 밤을 지나온 사람은, 다시는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드니 칼튼의 마지막 선택은 갑작스럽지 않다.
그가 단두대에 서는 순간은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삶의 연장이 아닐까?
'I Can’t Recall'의 그 밤, 그는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자기 것에서 내어놓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두었다.
사랑은 그를 구원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도 좋을 만큼의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그 선택이 숭고해 보이는 이유는,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시드니 칼튼의 선택이 가치 있는 것은, 그가 죽음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대체 가능해질 수 있는 순간을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미래가 계속되기 위해, 자신의 현재가 멈춰도 괜찮다고 여기는 상태. 그건 자기비하도, 자기희생의 도취도 아니다. 자기 삶의 무게를 끝내 회피하지 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판단이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비극이 아니라 완성에 가깝다.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단 하나의 밤—I Can’t Recall〉을 거쳐 마침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값으로 환산된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온 모든 날들에 값을 매긴다. 시드니 칼튼은 사랑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삶이 쓸모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믿게 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건너간다.
그 믿음이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잔인하고도 가장 아름다운 가치다.
덧) 이전 글 Evermore가 사랑을 잃은 뒤에도 살아가겠다는 결심이라면, I Can’t Recall은 그보다 한 발 앞선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Evermore가 고통을 견디는 노래라면, 이 노래는 고통을 감수하기로 선택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야수는 상처를 끌어안고 시간을 건너가지만, 시드니는 한 번의 밤으로 과거 자체를 끊어낸다. 그래서 I Can’t Recall은 희생이 가능해진 인간의 탄생을 알리는 노래로 해석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