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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an 11. 2024

앵콜요청허가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조금 비틀어 본 제목입니다 


 2019. 1. 9.에 작성한 글을 브런치에 담아본다. 

좋았던 순간이 한 번 더 '앵콜'처럼 찾아와줄 순 없는지. 

똑같은 순간을 Ctrl C+V처럼 맞이할 순 없는 건지. 

그런 욕심들이 투영된 글이다. 




넌 그럴 수 있니. 

네가 마주한 모든 순간들에 대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확신하며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니?

난 사실 그게 좀 어려워.

아니아니, 상황을 못 즐긴다는 소리가 아냐.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함께하는 건데 정말 즐겁지,  어쩌면 행복에 대해서도 실컷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선명하게 느껴지는 모든 게 지금 여기에만 일시적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시간의 간격을 두고 파도가 일렁이듯 똑같은 느낌 그대로 다시 한 번 더, 그런 앵콜 무대로 내게 다가올 것 같아.

그렇지만 그런 바람을 이루는 일, 바람이 이루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라. 

겨울에는 스키장 같이 가자며, ㅅ패밀리라고 가슴 왼쪽에 적어진 반팔티를 다 같이 맞춰 입고 모여 앉았던 형태도,

3만원을 내고 우리에게 펼쳐질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가 서로의 관람객을 되어주자 말했던 약속도,

졸업 후 멋있는 어른이 되어서 오늘과 같은 자리의 술값은 전부 우리가 내주자고 술자리 끝에서 킥킥거렸던 웃음도, 

퇴근 후 장을 보며 카트 안에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담으며 다음 엠티의 날짜를 묻는 그 순진함도 

그 순간에서 시작해서 

그 순간에 마침표를 찍더라. 

난 1막이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2막을 올리는 무대처럼

우리가 접어둔 페이지의 약속을 다시 꺼내 1막에서 마무리짓지 못한 각본의 흐름을 이어가듯 만날 줄 알았지.

함께했던 모든 약속들이 다시 나타날 날짜를 따로 받아두지 않았어.

그것들이 거기서 멈춰있을 거라는 의심은 아주 조금도 없었거든. 

한땐 좀 원망스럽기도 했어.

너 때문에 우리의 다음 약속이, 귀중한 예언이 지켜지지 않았잖아, 라고 미운 말들만 골라 늘어놓고 싶었어.

알아, 너 하나 잘못해서 이런 게 아니라는 걸.

순간의 행복에 흠뻑 취해서 눈 뜨면 기억 못할 술주정처럼 들뜬 언어들만 늘어놓는 내 목소리의 책임감을 묻는다면, 

난 어떤 답도 내놓지 못한다는 걸. 

모든 순간들은 다 그때 태어나서 그때 죽는 걸까.

영원한 건 없다고, 다시 돌아올 순간 같은 건 없다고 다들 그렇게 믿고 사는 거야?

이렇게 큰 기쁨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여도 정말 괜찮니.

이제는 영원하자, 같은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아, 나는.

어쩌면 이 사람들과 나누는 이 기쁨의 2막 같은 건 없다고, 앵콜 무대 따위는 큐시트에서 빠져 있다고도 생각해. 

그러면 침울해져, 이 순간이 흘러가는 게 아쉽고 서운해서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할 여유조차 없어. 

이게 시작이고 이게 끝인 거면 좀 허무한 거 아니니, 다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러면 나는

언젠간 묵혀 두었던 약속이 싹을 틔우고 고개를 내몄던 특별한 순간을 떠올려.

모든 게 영원하지 않아서 특별하다는 말에 나는 큰 매력을 못 느껴.

대신 우리의 노력 필요 유무에 상관 없이,

언젠가 한 번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어느 날에는 그때의 약속이 새로운 서막이 되어줄 거라는 걸 믿어. 

그러면 나는 그 무대가 앵콜 무대인지, 후속편인지, 크게 상관하지 않아, 그저 두 팔 벌려 환영할게. 

어렵더라도 우리 다시 그렇게 비슷하게, 또 다르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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