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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Feb 13. 2024

나만의 비밀, 나는 우리 회사의 ‘화장지 채움이’

이런 작은 수고스러움은 굉장한 큰 기쁨이니까.

나만의 작은 비밀을 고백하겠다.

사실 나는 우리 회사 화장실의 ‘화장지 채움이’이다!


다소 생소한 표현인 ‘화장지 채움이’는 스스로 붙인 나만의 별명이다. 이 이야기는 한 달 전으로 흘러간다.


우리 회사 여자 화장실은 총 4칸이다. 늘 그렇듯 아무 칸이나 들어가서 볼일을 보려고 하는데, 세상에! 두루마리 휴지심만 남아 있었다! 후! 정말 당황스러웠을 결말로 치닫을 뻔했다! 아찔한 상황을 겨우 피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었다.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게 되어서 다행인 건지 아니면 뒷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이름 모를 모 직원을 원망해야 하는 건지 중얼거리며, 화장실 세면대 아래칸에 있는 여러 개의 여분 두루마리 휴지들 중 하나를 꺼냈다. 볼일을 보고 나오며 혹시 몰라서 나머지 3칸을 기웃거렸다. 휴지가 넉넉한지, 여유가 있는지 점검했다. 1칸은 여유 있어 보였는데, 2칸 정도는 두루마리 휴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정도였다. 만약에 저 칸에서 큰일이라도 보게 되면,,? 또 한 번 아찔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곧장 세면대 아래칸에서 휴지들을 꺼내 한 칸마다 하나씩 채웠다.


그때부터 시작된 거다, 나의 ‘화장지 채움이’역할이!

이제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내가 들어갈 칸만이 아닌 다른 칸들을 순찰한다. 매의 눈으로 해당 칸마다의 휴지가 넉넉한지 혹시 여분의 휴지를 구비해야 할 상황인지 확인하며, 필요에 따라 두루마리 휴지를 채우게 되었다.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건만 하고 나면 묘한 뿌듯함이 채워진다. 이름 모를 모 직원이 겪을 지도 모를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을 내가 사전 해결한 느낌이랄까? 내가 한 일이라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뿌듯했다. 나의 이 작은 행동으로 누군가가 불편을 겪지 않는다면야. 이런 작은 수고스러움은 굉장한 큰 기쁨이니까.


여전히‘화장지 지킴이’는 나만의 비밀이다.

가까운 회사 동료들에게도 이를 밝히고 싶지 않다. 화장지 채움이 역할이 사실 누군가한테 굳이 이야기할만한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저 소박한 일일 뿐더러, 나만 알고 있는 비밀로 간직할 때 만족감이 더욱 커진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칸마다 순찰을 돌고, 휴지가 다소 부족해 보이거나 곧 동날 것 같은 공간에 두루마리 휴지 하나씩을 구비한다. 화장실을 나와 다시 내 자리로 향할 때는 괜히 콧노래도 나는 것 같다. 나만 아는 작은 비밀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은 쑥스러움과 뿌듯함이 반갑게 찾아온다.


요즘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휴지통 안에 제대로 못 들어간 친구들을 휴지통에 넣는 일이다. 대학교 교양 시간에 배운 이론인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요 며칠 사이 관찰을 해보니, 어느 쓰레기가 휴지통 밖에 나와 있으면 그 뒤로부터 계속 쓰레기가 휴지통 바깥으로 쌓이곤 하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휴지가 밖에 있는 걸 목격하면, 재빨리 휴지통 안으로 넣어버린다. 그러면 휴지통 밖으로 더 이상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다. 휴지 채우기, 쓰레기를 휴지통 안에 다시 넣기, 그 다음은 어떤 일과가 나를 기다리려나. 작고 잦은 나의 소박한 행동들이 조금 더 좋은 결과로 향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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