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옫아 Jul 18. 202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주목한 것은,

수많은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의 나 그리고 당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은 다중우주 속 ‘나’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멀티버스를 그려낸다. 그러나 영화가 정작 보여주는 것은 그 많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모든 갈림길에서의 거절과 실망이 이끈 지금 여기의 주인공 ‘에블린’이다. 현실 속 ‘에블린’은 오히려 그 무엇도 해낸 적이 없기에, 모든 가능성이 있는 주인공으로 지목 받아, 혼란으로 가득한 멀티버스를 ‘조부 투파키’로부터 구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매 순간 위기 속에서 그녀는 그녀이지만 동시에 그녀가 아닌 다른 우주 속의 자신의 능력을 빌려 대처한다, ‘아 역시 지금의 나는 최하위의 버전이구나’를 실감하며. 이와 동시에 그동안 자신이 포기하고 저버린 삶에 대한 후회를 이어가고, 지금의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또 다른 우주 속의 자신의 모습에 감탄한다. 그럼에도 끝끝내 그녀가 결정적인 위기에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다중우주 속 자신의 모습이 아닌,‘지금, 여기’에 자신과 함께 존재하는 남편 ‘웨이먼드’가 알려준 방식이었다.


Please Be Kind


나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는, 수동적이지만 어쩌면 가장 공격적일지 모르는 그의 신념. 서로에게 친절해지는 걸 택하라는 남편 ‘웨이먼드’의 가치를 빌려, ‘에블린’은 눈 앞에 놓인 대상들과 대적하고 싸우는 대신 그저 품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친절함을 베풀면서.


더 뛰어난, 더 잘난 존재를 능가하는 것은 고작 친절함이라니. 그러나 그 친절함이 가진 엄청난 위력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가 한낱의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함의 세계보다 보잘 것 없고 소소한 일상일지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 나를 더 따뜻하게 품어주는 이들과 같이 살아가는 세계에 왜 자꾸만 더 머물고 싶어질까.


살아간다는 것은 무한한 희망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나이기에, 내가 나로서 살아가고 있기에 지치고 예민해지고 힘들어 지는 고단함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처럼 답답하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따뜻한 눈길로 곁에 있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보다 따스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영화는 전한다.


보잘 것 없던 나의 삶일지라도 그 어디도 아닌 여기에 머물고 싶어지는 건 역시나 지금 여기의 나도 충분히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그리고 그런 선택의 목적이자 과정이었던 당신이 곁에 있기에. 그러니까, 그 수많은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의 나 그리고 당신.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