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2 공유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By 이동진 . Mar 19. 2017

토니 에드만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독일 여성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루마니아에서 컨설턴트로 바쁘게 살아간다. 그녀는 휴가차 루마니아로 온 아버지 빈프리트(페터 시모니슈에크)가 자신이 일하는 곳에 수시로 나타나 짓궂게 장난을 걸자 곤혹스러워한다. 빈프리트의 장난은 가발을 쓰고 의치를 끼운 채 토니 에드만이라는 가상의 캐릭터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 처음엔 모르는 척 외면하다가 어느덧 아버지의 장난에 함께 하게 된 이네스는 자신의 생일 파티를 맞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낸다. 


출처 : 영화 '토니 에드만'  



독일 감독 마렌 아데가 연출한 '토니 에드만'은 언뜻 따뜻한 휴먼 드라마 같다. 소원했던 아버지와 딸이 종반부에서 감동적인 포옹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냉정하고 이기적인 딸은 인간미 넘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결국 인생에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깨닫고 가족의 사랑으로 편안하게 복귀한다. 거기에 "언제나 유머를 잃지 말라"는 메시지는 덤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가족주의적인 결말로 안온하게 귀결하는 디즈니스러운 이야기일까. 그 끝은 과연 해피엔드일까.


'토니 에드만'은 도입부와 에필로그를 빼고 보면 딸의 (일찍 치러진) 생일 모임에서 시작해서 (제때 열리는) 생일 잔치로 끝난다. 생일이라는 모티브는 극중에서 두 번 더 등장하는데, 이네스를 찾아간 빈프리트가 치즈 강판을 선물로 미리 건넬 때와 (재탄생의 의미를 지니는) 부활절 관련 모임에 부녀가 합류했을 때다. 이 네 번의 탄생과 관련한 장면들 모두에서 빈프리트는 소외되거나 상처를 받는다. 전처의 집에서는 혼자만 미리 통보받지 못했기에 그게 딸의 생일 모임인지도 몰라 당황한다. 치즈 강판을 선물로 건네고 난 후에는 며칠 전 죽은 애견 빌리와 관련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화제를 찾지 못한 딸이 불쑥 꺼내는 바람에 상심한다. 부활절 모임에선 화가 난 딸이 인사도 없이 그를 두고 나가버리고, 생일 브런치 파티에선 쿠케리(불가리아의 전통 인형) 탈을 뒤집어 쓴 채 말 한 마디 섞지 못한다.  


출처 : 영화 '토니 에드만'  



이 작품은 또한 늙은 개 빌리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빈프리트의 늙은 어머니 죽음으로 끝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두 죽음은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루마니아에서의 사건들 앞뒤를 감싸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토니 에드만'은 삶이라는 이야기에 죽음이라는 액자를 두른 영화인 것이다. 심지어 이 영화의 제목은 '빈프리트와 이네스'가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자의 이름이다. 


해골 분장에서 안락사까지, 극 초반 빈프리트의 농담과 장난에는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게다가 빈프리트는 죽은 개 빌리에게 스스로를 이입한다. (택배 상자를 받는 첫 장면에서 빈프리트는 자신의 또다른 자아인 토니가 개밥을 먹는다고 말한다.) 레스토랑에서 개의 죽음을 거북이의 죽음으로 바꿔서 둘러대다가 듣던 사람이 웃자 "네, 우리에겐 그냥 거북인 거죠"라고 냉소적으로 덧붙인다. (거북이든 개든 빈프리트든, 여기서 남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다.) 그는 루마니아로 떠나기 직전 장면에서 죽은 빌리와 똑같은 자세로 어두운 정원에 누워 있고, 루마니아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쿠케리 탈을 쓴 채 공원 바닥에 누워 죽을 듯 숨을 헐떡인다.  


빈프리트가 삶(생일)에 대해 딸로부터 통보받지 못한다면, 이네스는 죽음에 대해 아버지로부터 통보받지 못한다. 왜 빌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내게 말하지 않았냐고 이네스가 묻자 빈프리트는 말한다. "나도 늘 시간이 있는 게 아니야." 시간은 넉넉하지 않고, 아버지는 죽음을 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루마니아에서 이네스 곁을 내내 떠도는 빈프리트는 흡사 유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출처 : 영화 '토니 에드만'  



'토니 에드만'은 클라이맥스에 기상천외한 누드 파티 장면이 나온다. 이제 '장난'은 이네스의 몫이다. 꽉 끼는 드레스를 입은 채 뻔한 생일 모임을 직장 동료들과 하려던 그녀는 다친 발로 구두를 신으려다 말고 불현듯 옷을 다 벗은 뒤 누드 파티를 제안한다. 그건 삶의 교착 상태에 빠진 자신을 확인한 그녀의 엉뚱하고도 절실한 시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딸의 장난은 아버지의 장난과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르다. 빈프리트는 토니 에드만이라는 다른 인물에 의지하고서야 장난을 칠 수 있지만, 이네스는 자기 자신으로서 혼자 그렇게 한다. 그리고 빈프리트는 가발과 의치에서 불가리아 인형 탈까지 뭔가를 뒤집어쓰고서 장난을 치지만, 이네스는 다 벗어버리고서 그렇게 한다. 


그러니까 이건 거부할 대상이 명확해 보였던 세상에서 어깨 걸고 연대하려 했던 68세대와 효율이나 경쟁을 내세우며 복잡하고도 숨막히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살아 남으려 제각각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신자유주의세대 사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논의를 확장해 나치 독일을 겪었을 할머니의 세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영화 '토니 에드만'  


전자에 속하는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불러낸 채 정의와 평등 같은 명분을 뒤집어쓰고서 인간적 도리를 역설한 끝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고 일갈한다.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라는 말은 사람이기 위해서 견지해야 할 가치를 전제하는 비판이고, 그 말을 하는 자의 도덕적 우위를 드러내는 말이다.) 하지만 부유한 독일 시민인 그는 가난한 루마니아 촌로에게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폐 한 장을 배려 없이 불쑥 건네고, 가족애를 내세우느라 밑도 끝도 없이 딸을 거듭 곤경에 빠뜨린다. 


후자에 속하는 딸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아빠가 하는 (언뜻 선해 보이는) 행동이 루마니아 시골 사람들에게 결국 어떤 경제적 피해를 미치게 되는지"에 대해 힐난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론 루마니아 사람들의 우수함을 칭송하던 그녀는 자신의 옷이 더럽혀지자 직급이 낮은 루마니아 직원의 블라우스를 거리낌 없이 바꿔 입고, 우월한 지위에 토대해 호텔 풀장에서 루마니아 직원을 사정 없이 압박한다.


두 사람 모두에겐 관계의 얼룩이 있다. 누군가가 필요한 아버지는 시종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만 그 접촉은 늘상 불편한 흔적을 남긴다. 극 초반 이네스와 포옹할 때는 얼굴에 칠한 분장 자국을 딸의 옷에 남기고, 이네스의 직장 상사와 악수할 때는 핸드크림이 묻게 되며, 이네스의 애인 팀과 악수할 때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린다. 반면에 자기 혼자 걷다 부딪쳐 갈라지게 된 발톱을 어루만지다가 입은 옷에 피가 튀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사람이 그다지 필요 없는 딸은 스스로에게 얼룩을 묻힌다. 아버지는 타인 때문에 상처받고, 딸은 자기자신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니체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고 했던가. 빈프리트든 이네스든, 그 모든 장난과 농담은 결국 필사적인 몸부림이나 절박한 비명일 것이다. 



출처 : 영화 '토니 에드만'  



아버지와 딸은 마침내 감동적으로 포옹한다. 그러나 그 한번의 포옹이 해답인 것은 아니다. 포옹을 끝낸 딸은 식은 얼굴로 뒷걸음질쳐 떠나고, 남은 아버지는 공원 바닥에 쓰러져 거칠게 숨을 몰아 쉰다. 둘은 여전히 다른 세대이고 서로에게 결국 타인이다. 그들 사이에는 아직도 심연이 있다.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딸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는 "가장 위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그 노래를 다 부른 후 딸은 아버지를 두고 혼자 떠났다. (이게 정말 훈훈한 가족 영화라면 "부모님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같은 가사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화해의 포옹이 아니라 (극중 수차례 반복되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던) 이별을 완성하는 포옹인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펼쳐지는 '토니 에드만'의 마지막 장면에는 불능의 기운이 가득하다. (직전 장면에서도 블라우스의 핏물은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순간을 붙잡을 순 없다"는 말로 삶의 교훈을 다시 전하려던 빈프리트는 이네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가지러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순간을 붙잡으려 한다. 루마니아에서 성사시키기 위해 내내 노력했던 이네스의 업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모든 일을 겪고도 그녀 삶은 변화 없이 이제 싱가포르로 옮겨져서 유사한 직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아버지의 의치를 끼어보고 할머니 모자를 써보던 딸은 잠시 후 슬며시 의치를 빼고 모자를 벗는다. 그녀의 삶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의 삶도 유효하지 않다. 아버지의 장난에서 시작해서 딸의 장난으로 끝나는 '토니 에드만'은 이제 딸의 장난마저 거두게 된 지점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아버지를 배제한 채 딸만 남겨두고서 우두망찰 막을 내린다. 


★★★★☆ 




keyword
magazine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믿고보는 영화평, 이동진의 어바웃 시네마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