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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n 05. 2018

카스트제도를 통해 바라본 하층민보호정책의 역설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번쯤은 배워봤던 인도의 카스트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제도는 종교지도자 계층인 브라만, 전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그리고 상인계급인 바이샤, 마지막으로 하인 계급인 수드라 정도이다. 하지만 이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계급도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달리트(Dalits, दलित)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주로 시체 처리, 가죽 수리, 분뇨처리 등을 담당하던 분들로서 오랫동안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며 살아왔다.


사실 이 달리트를 조금 더 세분화해보자면 OBC와 SC/ST로 구분할 수 있다. OBC(Other Backward Class)는 굳이 한국어로 해석해 보자면 '기타 낙후 계급' 정도가 될 수 있는데, 카스트제도 바깥에서 사회경제적으로 혹은 교육적으로 불우한 계급을 일컫는다. Scheduled Castes(SCs)Scheduled Tribes(STs)는 '지정 카스트' 및 '지정 부족'이라 말할 수 있겠는데, 이 분들 또한 인도 헌법에 명시된 카테고리로 오랜 기간 동안 불이익을 많이 받아온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달리트라 하는 불가촉천민이란 용어는 인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며, 공식적으로는 인도헌법에 명기된 OBC나 SC/ST로 구분되어 사용된다.


B. R. Ambedkar (1891-1956)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이 똑똑하게 생긴 아저씨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이 아저씨는 인도 공화국의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라는 분이다. 초대 법무장관이면 반백년도 더 전의 인물인데 여전히 여기저기 많이 초상화가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렷다. 현대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이 아저씨의 업적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는 똑똑해 보이는 외모와 걸맞게 1907년 봄베이 대학 산하 엘핀스톤 대학에 최초의 불가촉천민 입학생이 되는데, 여기서 그는 경제학과 정치학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이후 무려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런던 경제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했으며, 경제학자, 교수, 변호사 등 다방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며 살았다. 인도의 중앙은행(RBI)은 이 아저씨가 Hilton Young Commission에 제출 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설립되기도 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미국과 영국 유학시절을 거쳐 그는 봄베이 고등법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그는 불가촉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많은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불가촉천민을 일컫어 'Depressed Classes'라는 차별적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는 그때부터 이를 'Scheduled Castes'와 'Scheduled Tribes'로 순화시켜 법을 바꾸어 나갔고, 이는 결국 1950년 인도 헌법에 적용되게 된다.


Reservation in India, 하층민 보호정책


이렇게 지루하게 암베드카르 아저씨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아저씨가 제정한 법인 하층민 보호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인도는 현재 이 하층민 보호정책으로 입법부 의석, 공무원 선발, 대학 입학정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하층민의 쿼터를 두고 그동안 불이익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인도의 계층별 인구비율 (출처: 영문위키 Other backward Class)


인도는 공화국을 수립한 이후 1954년에 입학점수 커트라인의 5%가량을 유연하게 적용하여 SC와 ST의 비율을 20%로 맞추는 것을 제안했으며, 1982년에는 공공기관 일자리의 SC와 ST에게 각각 15%, 7.5% 할당하는 것을 명시했다. 1978년에 Mandal Commission이라는 하층민의 사회교육적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이 위원회는 공공기관 일자리에서 OBC의 할당쿼터를 27%까지 적용하는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권고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제로 적용되었다. 계속해서 높아지는 쿼터에 인도 대법원은 1992년 동등한 접근의 침해 관점에서 50%는 초과할 수 없다는 판결도 내리기도 했는데, 법이 적용된 지 반백년이 지나가면서 실제로 이러한 법들은 오히려 역차별의 문제를 낳기도 한다.


현재 인도 의회는 총 543석 중에 15.47%인 84석은 SC에, 8.66%인 47석은 ST에 할당하고 있고, 뭄바이가 속해있는 마하르슈트라 주의 학교 및 공무원 선발의 경우는 52%가량 계층별로 지정이 되어있다. 아래 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SC, ST, OBC는 물론 각 특정한 부족까지 다 아우르고 있다.

출처: 영문위키 Reservation in India


이게 언뜻 보기에는 매우 바람직한 사회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좋은 시스템도 한 두세대가 지나가다 보니 문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2018년 4월에 인도 대법원은 달리트 보호법의 남용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하여 해당 조항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이 때문에 인도 10개 주에 걸쳐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최소 10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래 기사 사진을 잘 보면 위에 언급한 암베드카르 아저씨 사진이 플래카드에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불가촉천민에게 있어 그는 여전히 간디나 네루보다 더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040601001&code=970207


그런데 기사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듯이, 이렇게 SC/ST 보호법은 다소의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층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법이 어떤 것이냐 하면, 달리트를 상대로 폭력을 가하거나 폭언을 하는 경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찰에 신고만 하면 상대방을 즉시 체포할 수 있는데, 2015년 제기된 관련 고소, 고발의 15%가량이 허위로 판명이 났다. 그 15% 정도는 신체적 접촉이나 폭언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달리트의 요청만으로 억울하게 철컹철컹 신세를 졌던 것.


앞서 언급한 하층민 쿼터 정책도 그러하다. 과거 쿼터제를 통해 공무원이 되거나 의사 변호사가 된 하층민들은 현재 충분히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 터인데, 이들의 자녀들도 여전히 그러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상위 카스트인들에게는 역차별의 요소로 느껴지기도 한다. 단적으로 상위 카스트 집안 출신인 나는 대학입시 100점 만점에 90점을 맞고도 떨어지는데, 하층민 출신이라고 같은 반 친구는 85점을 맞고도 합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면 불만이 쌓이긴 할 것이다. 그래서 발생한 시위가 아래 사건이다.


http://www.hankookilbo.com/v/b6874708727a464fbce22bc9381c1faf


2016년 2월, 인도 젊은이들이 구직난에 기타 하층민(OBC)으로 강등시켜 달라고 차량에 불을 지르고 도로를 점거하다 19명가량이 사망한 사건. 50%에 이르는 하층민 우대정책을 보다 못해 중류층들이 대규모 집단 시위를 한 것이다. 반백년 전에는 선의로 만든 제도이기는 하나, 이것도 한 두 세대가 넘어가면서 다른 사회에서는 다소 이상한 형태의 문제점들을 낳고 있다.


물론 여전히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이 인도에는 많이 있고, 그들을 보호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책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인위적으로 쿼터를 할당하는 정책은 앞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문제점들을 수반하고 있다.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 낳는 역차별에 대한 분노.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인간사회의 단면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은 법도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따라가지 않으면 악법으로 남을 수 있다. 부디 중지를 맞대어 좋은 방향으로 잘 해결해 나가는 인도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그 고리타분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계급사회로 인도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도 조금은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골에 가면 그러한 계급사회는 분명 존재하지만, 델리나 뭄바이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기본적으로 그러한 계급을 대놓고 차별하는 것은 몰상식에 속한다.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 사회인 인도 공화국에서도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노력해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나 장사를 잘 해서 돈이 많은 사람은 계급과 상관없이 원하는 바를 더 누리기도 한다. 그래서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교육열도 치열한 편이다. 인도도 다 사람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끝.


참고문헌 (인도에서 반년 정도 생활하면서 같이 일하는 인도 직원분들에게 주워들은 바를 바탕으로 영문 위키를 통해 검증함. 본디 참고문헌이라 함은 객관적 검증이 되는 도서나 논문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월급쟁이에게 그런 도서관이나 서점에 머물며 글을 쓰기는 무리인지라, 본문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의심 나면 언제든지 다른 문헌을 통해 크로스 체크할 것을 추천함)


https://en.wikipedia.org/wiki/Reservation_in_India


https://en.wikipedia.org/wiki/Other_Backward_Class


https://en.wikipedia.org/wiki/B._R._Ambedk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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