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었지만 늘 꿈꾸던 순간

Ego Bodegas 'Acuma' 에고 보데가스 '아쿠마'

by aboutjina


이것은 순간의 이야기가 아닌 지난 3년의 이야기이다.


새벽은 힘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이 시간은 온전히 소유하는 자만의 시간이다. 단 한 번도 이 시간의 행복을 누린 적 없었기에 낯설기만 했던 새벽이 벌써 3년이 흘렀다. 모두의 시간이 아닌 우리만의 순간이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은밀한 새벽이기에 우린 더 단단해졌고, 선택받은 자정이기에 자유로웠다. 누군가는 소리 내서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속삭이듯 이야기를 풀어내던 것이 3년이란 시간 안에 켜켜이 쌓여갔고 그 이야기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새벽의 기록들


사실 새벽에 일해야만 했던 지난 3년은 지옥이었다. 남들과 같았지만 같을 수 없었다. 특별하고 싶지 않았지만 늘 특별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늘 배제되었다. 몸은 힘들었고 마음은 지쳐갔다. 3년이란 시간을 버틴 내가 용할 정도로 한 번도 쉬운 순간은 없었다. 참 많은 것이 변한 3년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머물렀던 3년이기도 했다. 시간 안에 단단해진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고 나는 그 관계 덕분에 성숙해졌다.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깊고 진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일상이 되고 많은 음악은 감동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새벽과 이별하고 있는 나를 위해 축배를 들고 싶었다.



Ego Bodegas 'Acuma'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스페인 남부의 후미야 지역에 와이너리를 잡고 있는 '에고 보데가스'.

2011년 루마니아 출신의 한 부부가 와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후미야 지역에 와인 양조를 위해 적은 자본으로 사들인 포도밭. 그것에서 시작해 이제는 30개국에 수출하는 튼튼한 와이너리가 되었다. '에고 보데가스'의 철학은 좋은 품질, 좋은 이미지, 좋은 가격 이 세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곳의 와인 라벨은 모두 이렇게 스타일이 좋다.


말도 안 되게 현대적이고 섹시한 와인이다. 확실히 오래된 와이너리의 클래식한 맛은 없지만, 그만큼 현대적인 맛이 강하다. 라벨의 사자 얼굴에서 알 수 있듯이 터프함을 강조한 와인이지만 맛은 굉장히 사랑스럽다. 알코올 함량도 높고 타닌감도 있는 편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와인이다. 베리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은은한 나무의 향과 바닐라 향이 균형이 잘 잡혀있다. 이 와인은 눈과 입보다 코가 즐거웠다. 와인의 잔향이 남아있는 와인잔의 향을 계속 맡고 싶을 정도로 향이 특별하다.


그랬기에 오늘의 축배는 이 와인이다. 최근에 나를 너무 만족시켰던 와인이기 때문에 오늘의 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사실 나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오래된 와이너리를 좋아한다. 그 와이너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마시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코르크 마개를 좋아하는 허세도 그 이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매력 있는 와인을 마신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 와인 덕분에 한동안 스페인 와인을 즐기게 될 것 같다.



에고 보데가스 와이너리의 사계절 (출처) 와이너리 홈페이지.



나는 곧 12시면 사라지는 신데렐라 같은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 또다시 이 새벽 시간을 사랑할지 모르지만, 이 시간이 있었기에 새벽은 나에게 평생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제 또 다른 시간을 소유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시간에 적응하겠지만 가벼운 마음만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 끈끈해지겠지. 그리곤 다시 단단해지겠지.


이전에 나는 ‘지금의 우리는 여러분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순간이 되니 더 확실해진 한 가지가 있다. 지금의 나는 여러분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흔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나는 이제 어김없이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한 부분이 되겠지. 이제 새벽은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다. 즐거웠다. 시간으로, 사람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3년이었다. 그 이상 더 바랄 것도 없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나만이 음미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그 시간이 다른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임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는 이 순간이 시간 속에 흐릿해지는 기억이 아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또렷한 추억이 되길 바란다. 나에게 그렇듯 우리 모두에게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새벽은 무엇이냐고?
나에게 새벽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다.
당신 그리고 아름다운 자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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