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2025년 11월 25일(화) BnJ의 제37회 독서모임.
연말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급해진 독서모임.
추천을 받아서 읽게 된, 베스트셀러를 지나 스테디셀러가 된 이번 책은 과연 어떨 것인가!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J: 독서 모임에 앞서서! 내가 늘 책갈피를 사용하잖아요. 이번에 어떤 책갈피를 썼는지 보여줄게요.
B: 어머 뭐야? 메트로폴리탄이야?
J: 네. 이 책갈피를 사용했습니다.
B: 딱이네. 어디서 났어?
J: 메트 가서 샀어요.
B: 세상에! 네 것만 사 왔어?
J: 이때 언니 선물 많이 사 왔을걸요?
B: 맞아ㅎ 그때 네가 스트랜스 서점에서 가방 선물로 줬잖아. 나 요즘 이거 메고 다녀.
J: 맞아요. 그래서 오랜만에 이 책갈피를 사용하면서 책을 읽으니깐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났어요.
책 어땠어요?
B: 너무 재밌었어. 우리가 앞서 1월에 미술품 도둑의 이야기를 읽고(예술 도둑), 그곳을 경비하는 경비원의 글을 읽으니까 연결되면서 너무 재미있는 거야.
J: 그래서 내가 얘기했잖아요. 이 책이 올해 마지막 책이 되면 수미상관이 딱 맞겠다고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진짜 마지막 책이 되었다.)
B: 나는 그냥 둘 다 미술과 관련된 책이라서 수미상관이라고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용까지 매치가 딱 되면서 재밌었어. 같은 예술 작품에 경의를 느끼는 두 사람의 입장이 너무 달랐다는 것을 느꼈지.
J: 맞아요. 이거 우리 둘이 알고 지내는 평론가가 추천해서 읽은 거잖아요.
B: 추천 잘하네.
J: 처음에 나한테 책을 권유할 때, 본인도 그저 그런 에세이 잘 안 읽는데,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저 그런 에세이가 아니라면서 되게 흥미롭게 읽었다고 했거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B: 이걸 단순히 에세이라고 보는 건 너무 평면적인 시각인 것 같아.
J: 그래도 어찌 됐든 카테고리는 에세이로 분류하니깐. 그런데 언니 말처럼 그냥 에세이로 보기에는 미학적인 부분이 많이 담긴 책이죠.
B: 미학적 부분도, 정보도 많이 담겨 있어서 여러모로 흥미로웠어. 마지막에 작가가 일을 그만둘 때 내가 다 아쉬운 거야.
J: 맞아 나도. 작가가 회사를 그만둘 때, 나도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B: 나도 퇴사를 곧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또 나랑 나이대가 비슷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다 마음이 좀 시원섭섭하고 그렇더라고.
J: 이 책을 읽으면서 언니랑 나의 감상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언니가 더 많이 공감할 것 같았고요. 왜냐하면 이 사람도 뉴요커에서 편집 일을 하던 사람이잖아요. 물론 뉴요커에서 일했던 이야기가 길게 나오지는 않지만, 본인이 꿈꿨던 것과 실제 회사에서 겪었던 현실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직업적으로도 충분히 공감이 됐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언니도 어떻게 보면, 하던 편집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고 있는 시기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언니에게는 저보다 더 많이 와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어, 맞아. 진짜 너무 공감됐어. 이 시기의 나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되더라. 다만, 이 작가는 자기 커리어의 하나의 점을 찍을 수 있는, 뉴요커에 들어갔다가 퇴사를 한 거잖아. 하지만 난 커리어 정점을 찍은 적은 없지.
어쨌든! 작가는 퇴사 후에 경비원 일을 하고, 또 그 경비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글을 쓴 건데. 그 지점이 가장 인상 깊었어. 나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경비원'에 관한 선입견이 있었단 것도 알게 됐어
이 작가가 이런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배경 덕일 거야. 어릴 때부터 쌓아온 엄마와의 경험, 그동안의 학습, 미술사 쪽으로 했던 공부들, 그리고 뉴요커라는 큰 잡지사에서 일했던 경험까지. 그런 것들이 다 녹아 있어서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 스스로를 많이 반성하게 됐어. 비슷한 나이, 비슷한 커리어의 흐름, 충분히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아직 이 모양일까... 왜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나... 그런 반성.
J: 아니. 뭐 언니가 어디가 어때서요 ㅎㅎㅎ 내 예상대로 언니가 공감을 많이 하면서 봤네요.
내가 좋았던 부분은 구성이나 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나도 이 미술관을 가봤잖아요.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역시나 이 책을 읽고 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내가 갔을 때는 이 책이 없었지만.
사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며칠을 봐도 다 보지 못할 만큼 규모가 크고, 소장 작품의 수도 정말 많잖아요. 그래서 저처럼 짧게 여행을 갔을 때는 그만큼의 시간을 들일 수 없고,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이 작가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주로 있는 관에만 머물면서 그곳의 작품들만 보고 나오게 됐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실제로 직접 본 작품은 이 책에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이 책에는 이집트관이나 아시아관, 아프리카관처럼 다양한 ‘관’들이 나오잖아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그때 그런 관들도 함께 보고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물론 이 책을 읽고 그곳에 갔다고 해도, 작품을 보면서 작가처럼 이렇게 깊고 넓게 사유할 수는 없었겠지만요.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제가 그동안 편독을 심하게 해 왔던 것처럼 미술 역시 좋아하는 것만 보고 깊게 파다 보니 안 보는 건 계속 안 보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꼭 엄청난 감동을 받지 않더라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하는, 조금 더 넓은 시각을 얻게 된 것 같아요.
B: 나는 아직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보지는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뉴욕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어.
또, 아직 못 가본 자의 입장에서 책 속에 메트로폴리탄의 소장 작품을 볼 수 있는 QR 코드가 포함돼 있어서 그게 정말 축복처럼 느껴졌어. 패드(e-book)로 책을 읽고 핸드폰으로는 QR을 찍어서 작품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니까, 마치 내가 메트로폴리탄 안에 있으면서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비록 아직 뉴욕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었던 2~3일 동안만큼은 메트로폴리탄 현장을 경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어.
J: 그런데 QR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어요. 한 페이지에 여러 작품이 소개되다 보니 QR 코드도 여러 개가 함께 붙어 있는데, 그게 잘 안 읽히더라고요. 이건 편집의 실수야.
B: 아 맞아. 나란히 붙어 있는 것들은 QR이 잘 안 읽혔지?
J: 응. 그 점이 조금 불편했어요. 그리고 그림의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읽다가 QR을 찍고 다시 읽다가 또 QR을 찍는 방식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이 책은 작품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글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도 중요한 책이잖아요. 그래서 그림을 계속 사진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방식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다만 이 부분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점 하나 때문에 이 책이 안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고,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좋은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만약 몰입을 방해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굳이 QR을 보지 않고 글만 읽어도 되니까요. 결국 독자가 취사선택하면 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진을 아주 꼼꼼하게 찾아보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이 작품들 대부분이 제가 직접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라, 그런 작품을 새롭게 보는 과정 자체는 꽤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B: 나는 QR로 그림을 보면서 중간중간 자꾸 환기하게 되잖아. 그래서 집중력을 잃거나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간들이 오히려 그걸로 해소가 돼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지점도 좋았던 것 같아. 나처럼 ADHD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J: 이 작가의 삶 자체가 멋있지 않아요?
B: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그리고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인 것 같아.
J: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주관을 뚜렷하게 갖고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 같아요. 삶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끌고 나가는 사람. 동서양의 문화가 달라서 오는 정서의 차이가 아니라 이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범인은 아닌 것 같아요.
B: 맞아 세파에 휘둘리지 않는 타입이야. 그래서 네가 말한 것처럼 자기 삶을 주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우리 같았어봐. 그 회사에? 그 연봉에? 그걸 내려놔? 왜?
게다가 경비원 일을 그만두고 다시 거리로 나가서 투어 가이드를 한다는 건 진짜 쉽지 않은 선택이잖아. 완전 프리랜서에 파트타임이고, 애도 있는데 말이야.
특히 마지막에 그만둘 때 했던 말이 너무 인상 깊었어. 아이에게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여줄지 머릿속으로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같이 직접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여는 느낌이었잖아. 그게 너무 공감됐고,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동시에 여러 면에서 본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어.
한편으론 그 남자를 지지해 준 와이프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J: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는 늘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을 하잖아요. 저 역시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으니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그 말을 계속해서 되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이미 내 안에 어떤 고정관념이나 색안경이 남아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하고요.
가만히 보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모두가 똑같다는 뜻이 아니라, 각자의 일이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문제는 그 가치를 정말로 보고 있느냐는 거죠. 만약 그걸 볼 수 있는 시야가 없다면, 나는 그 말을 믿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옳은 문장’을 외우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의 저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내려놓고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는데, 그 안에서 매일 예술을 보고, 사유하고, 철학을 발견하며 살아가잖아요. 물론 모든 경비원이 그런 삶을 사는 건 아니겠죠. 중요한 건 직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떤 태도로 하루를 살아가느냐인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미를 발견하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 삶은 충분히 깊고 멋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고정관념은 타인을 판단하기 위한 불편한 시선이기 이전에, 어쩌면 나 자신을 가장 먼저 가난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고정관념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삶 역시 주체적이지 못하고, 충분히 가치롭게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B: 우리도 각성하자.
J: 이 사람의 삶이 진짜 고차원적인 것 같아요. 형의 죽음도 그렇고...
B: 그 부분도 정말 인상적이었어.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보통 그 사람을 추억하기 위해 미술관에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잖아. 그 사람을 잃은 상실의 감정이나, 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예술을 통해 대입해 보겠다는 선택 자체를 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의 가족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 다 같이 미술관을 가.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가 느끼는 형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만한 작품을 하나씩 찾아보잖아. 이들이 애도하는 방식이 정말 인상적이었어.
J: 이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차원, 그러니까 고차원에 있는 것들을 볼 줄 알고 그걸 자신에게 담아내면서 인간 자체의 그릇이 점점 커지는 것을 내가 지켜본 것 같아요.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어요. 저자가 분수 같은 곳에서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장소에 가는데, 그곳에서 어떤 엄마와 딸이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그 엄마가 아이에게 동전 두 개를 주면서, 하나는 너 자신을 위해 소원을 빌고, 다른 하나는 네가 가진 간절함만큼 간절한 누군가를 위해 소원을 빌라고 말해요. 그 장면을 보며 저자는 “나는 저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고 느끼고, 언젠가는 자신도 아이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B: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J: 나도 그 장면에서 그렇게 느꼈어요. 그 엄마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했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이 작가이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걸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결국 글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했죠. 그러니까 이 사람은 그런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 자체로도 이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고요.
나는 이 사람 주변에 매일 동화 같은 일이나 영화 같은 일만 일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이런 일들은 내 주변에도 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도 이 사람의 삶이 유독 풍요로워 보이고,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런 장면들을 볼 수 있는 시야와, 그걸 붙잡아두고 기억할 수 있는 이 사람만의 감각 때문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이런 사람들이 사유하고 내뱉는 말들을 나는 여태까지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그런 자괴감 같은 것도 조금 들었고, 동시에 이 ‘다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가 경비원으로 보낸 10년은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차원에서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자기 삶을 직업이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고, 10년이라는 시간을 저렇게 풍요롭고 가치 있게 살 수 있었을까...? 말로 잘 표현되지는 않지만, 그 10년이라는 시간,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너무 알차게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언어를 공부하고, 대학원에 가고,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삶을 저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요.
B: 맞아. 이 책에 쓰여 있는 말이 있잖아. "말로 형용하기에는 너무나 미묘하고 또 너무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들이다. 이런 순간에 얼마나 많은 감각적인 경험이 언어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지 깨닫는다"라고. 네가 지금 그런 거야. 너 지금 스피치리스 한 게, 약간 그런 경험인 거야.
J: 그리고 작가가 경비원으로 일하는 마지막 날에 10년이 끝나고 그 미술관을 쭉 둘러보면서 자기의 오랜 친구들과 작별한다고 하잖아. 근데 그 감각이 되게... 시간과 공간, 차원을 넘어선 예술 작품들과 10년 동안 절친처럼 지내고, 이제 그 작품들과 헤어진다는 느낌을 갖고 살 수 있다는 게, 인간으로서 정말 축복받은 일인 것 같아요.
B: 이 안에 숨겨진 비밀 얘기하면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집단이 이 안에 포함되어 있는지 얘기하잖아. 거기에 보면 부교수도 있고 너무 많은 인간 군상이 있잖아. 직업의 귀천이 없고, 각자의 가치와 삶의 방향이 무궁무진한데, 유독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런 사회적 가치와 경험을 되게 한정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
J: 맞아.
B: 제일 좋았던 문장 같은 거, 뭐 표시해 놓은 거 없었어?
J: 나는... (찾는 중)
B: e북은 이런 것을 체크해 놓을 수 있는 게 편한 것 같아.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으면 모아볼 수 있어.
J: 그냥 나는 이거였던 것 같아. 내가 최근에 글 쓰고 읽어봐 달라고 얘기했잖아요. 그때 당시에 나도 이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했거든요. 나 스스로가 글을 쓰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어요.
나는 평론 한마디라는 섹션에 싣는 한 단락짜리 서평을 쓰는데도 스스로가 아닌 목소리를 사용하고 내 것이 아닌 권위를 주장하고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B: 나는 내가 그런 걸 종용하면서 살았지. 당신이 주장하는 거 말고 이 방향대로 써주세요. 이렇게 써주세요. 저렇게 써주세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아, 내가 바로 그렇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였구나 하고 좀 반성하게 됐어.
J: 그리고 이것도 있어요.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B: 비슷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 아이한테 그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 우월감을 깨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 단락을 보면서 다시 느꼈거든. 아이들은 자기가 조금 알게 되는 걸 굉장히 많이 안다고 착각하잖아.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런 아이를 보면서, 우월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사실 금세 사라지겠지만, 그것을 너의 안에 잘 간직하고 공들여 매만지면, 그게 결국 자존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 예술을 다 안다고 떠드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앎에 자만하는 건 지양하도록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J: 나는 이 책의 좋은 점을 말하자면, 아마 이런 점인 것 같아요. 누군가 상실을 하고, 이별을 겪으며, 그로 인한 우울과 어두움을 표현하는 책들은 많잖아요. 그런데 누군가의 아픔과 상실의 책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B: 너무 좋은 말이다.
J: 결국 이별과 상실을 극복하고, 마침내 이겨내서 희망차게 마무리되거나, 어두웠던 상황이 긍정적으로 반전되는 것들은 여느 책에도 많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상실로 인해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나의 상실을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어떤 이별과 상실을 겪더라도,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면 나에게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되게 좋은 책이야. 추천을 잘 받았어요.
B: 맞아. 문장이 정말 좋았어. 이 사람의 사유와 생각도 참 좋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너무 좋았어. 특히 나는 문장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그래서 e북이라서 책이 곧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
J: 한국에 돌아오면 이거는 책으로 사요. 이건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인 것 같아.
그러니까 이 사람 자체가 일단 기본적으로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실 이 사람이 이것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해서 그렇지, 이 회사에 경비원만 300명이라고 하는데...
B: 맞아. 정말 공감해. 같은 공간 같은 상황에 놓여도 그걸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사유하게 되는 거 같아.
J: 그러니까요. 분명 일이라는 건, 이 사람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고, 다 삶을 사유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분명히 이 사람도 그들과 트러블이 있었을 것이고, 자기가 부당하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을 거예요. 우리랑 다르지 않은 10년의 회사 생활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자가 그런 사람들의 좋은 모습만 보는 건지, 아니면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주변에도 좋은 사람만 있는 건지...
B: 이 사람이 그러잖아.
나는 작업을 하는 젊은 예술가의 손길뿐만이 아니라 그의 생각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게 이 사람의 시각인 거잖아. 그러니까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생각까지 포착하는 시점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 사람은 경비원이지만, 방문하는 학생들이나 관람객들에게 작품의 배경이나 사용된 안료 같은 것들도 설명해 주잖아. 단지 공식적인 큐레이팅은 하지 않았을 뿐이지, 여기 있는 학계 연구사나 큐레이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 오히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경비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J: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드디어 반 고흐의 얘기가 나오는데...
B: 맞아. 그 부분 네가 되게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어.
J: 작가가 그 얘기를 하거든요. '유대인 신부'. 네덜란드에 가면 ‘유대인 신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잖아요. 나는 사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가서 유대인 신부 앞에 서서, 고흐가 정말 그렇게 오래 머물렀던 것처럼 나도 그 앞에서 오래 머물러 봤거든요. 작가가 10년 동안 미술관에서 작품을 바라봤을 때, 내가 유대인 신부 앞에서 그 그림을 바라봤던 느낌과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동안 정말 행복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 책을 정말 수미상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요. 1월에 ‘예술도둑’ 독서모임을 했을 때, 저자가 미술품을 훔쳐 다락방을 온통 미술 작품으로 꾸며놨었잖아요. 그때 내가 언니한테 “그 사람 정말 행복할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은 작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작품이 망가지고 먼지도 쌓였죠. 그래서 언니가 “나중에는 아마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요?
B: 응 맞아. 그냥 일상의 하나로 별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지.
J: 두 사람이 미술품에 쌓여있던 시간을 두고, 이렇게 다르게 사유할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B: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아까 말한 게 그거였어.
J: 그리고 이 책에서 형이 임종을 앞두고 한 사람씩 불러서 작별 인사를 하는데, 저자가 기억을 하기 위해서 방에서 나오자마자 기억하기 위해서 그 말을 막 적잖아요.
이제 곧 말을 못 하게 될 거야. 하지만 행복해.... 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이 문장들만 봐도 이 가족이 어떤 가정환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가 보이더라고요. 곧 말을 하지 못하고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끝까지 보지 못한 비디오테이프에 비유하는 감각까지. 끝내 확인하지 못한 비디오의 뒷부분을 떠올리며 느꼈을 그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이 사람의 글을 통해 그들의 환경을 옆에서 0.1%라도 경험하면서, 나도 0.01%는 물들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B: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책을 읽는 거지.
이 사람이 왜 이런 전시실에서는 천 번을 둘러봐도 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고, 동시에 그동안 내가 이 벽 너머의 세상을 얼마나 조금밖에 보지 못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고 하잖아. 책도 읽으면 읽을수록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
J: 맞아요.
B: 늘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지를 매 순간, 매번 실감하게 돼. 이번 책은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
J: 그래서 내가 맨날 언니랑 독서 모임 하면서 그 얘기하잖아. 그냥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알게 된다고.
B: 내가 대학 갔을 때 처음 느낀 게 그런 거였어. 아무것도 모르는 걸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모르기만 하는 것 같아.
J: 난 요즘에 진짜 그래요.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거구나.
B: 나는 대학 초반에 그런 걸 되게 많이 느꼈는데, 그 감정을 좀 잊고 있다가 요즘 좀 다시 느끼게 되는 것 같아.
J: 우리가 역사 공부하려고 했다가 잠시 멈췄잖아요. 내가 이전에 공부했던 파트가 '이슬람의 탄생'이었잖아요. 그리고 여기에 보면 오스만 제국에 관한 작품이 나오면서 역사 얘기가 나오는데...
B: 이슬람 교리 중 하나인 다양성에 대한 얘기도 나오지.
J: 맞아요. 이슬람 관이 따로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읽으면서 그러면 이게 십자군이 일어나고 몇 년 뒤구나? 십자군 그 사견 몇 년 년 뒤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대충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겠구나 하면서 이해가 되는 거예요.
B: 성장했네. 축하해.
J: 그래서 이건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우리가 브런치에 십자군 내용을 정리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한 번 더 복습도 했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다음에는 오스만 제국을 공부해 보자”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더라고요. 그런 흐름 속에서 이 책을 읽다 보니, 오스만 제국까지 공부한 뒤에 이 책을 만났다면 훨씬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오스만 제국 역사 관련 책을 한 권 읽어보는 것도 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유익한 시간이었어!
J: 그리고 이 책의 초반에 '실낙원'에 한 문구가 나오거든요. 저자가 영문학을 전공해서 초반에 강의 얘기 하면서 존 밀턴의 '실낙원'이 나오는데, 최근에 읽었던 '클래식 클라우드의 단테'에도 '실낙원'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거는 운명이다! 우리에게 '실낙원'을 읽으라는 신의 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B: 그럼 함께 보면 좋을 책으로 '실낙원'을 골랐어?
J: 아뇨 아뇨. 난 다른 책을 골랐어요. 언니 혹시 '예술도둑'인가요?
B: 어 ㅎㅎㅎㅎㅎ
J: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언젠가 '실낙원' 읽어봐요. '실낙원'이냐 '신곡'이냐!
B: 문장력 3.0점 + 구성력 3.0점 + 오락성 2.8점 + 보너스 1점 = 총 9.8점
J: 문장력 2.9점 + 구성력 2.9점 + 오락성 3.0점 + 보너스 1점 = 총 9.8점
B: 마이클 핀클 - 예술 도둑 : 예술을 사유하는 두 사람의 상반된 시각을 경험해 보길
J: 줄리언 반스 -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깊은 사유와 유려한 문장으로 만나는 책.
* 이 글은 B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onaw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