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기반의 시대 — 제12편

맡김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흔들리는 기반의 시대 — 제12편

맡김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맡긴다.

사람은 일을 맡기고, 기계는 판단을 맡는다.


처음의 맡김은 단순하다.

반복되는 일을 줄이고, 시간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다.


그래서 맡김은 편리함으로 시작된다.


버튼 하나로 작동하고,

설정 하나로 흐름이 이어진다.


사람은 점점 손을 떼고,

흐름은 스스로 굴러간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맡김이 익숙해지는 순간,

사람은 묻지 않게 된다.


왜 그렇게 되는가.

어디까지 맡겨도 되는가.


그 질문이 사라진다.


수치는 정상이고,

흐름은 안정되어 보인다.


그래서 믿는다.

이제는 괜찮다고.


그러나 맡김은 항상

보이지 않는 경계를 함께 가진다.


그 경계는 처음에는 분명하다.

사람이 판단하고, 기계가 수행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선이 흐려진다.


기계가 판단을 대신하고,

사람은 결과를 확인하는 쪽으로 물러난다.


그 순간부터 역할은 바뀐다.


사람은 판단자가 아니라

감시자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감시는 늦는다.

이미 일어난 뒤에 확인하고, 이미 지나간 뒤에 기록한다.


그래서 맡김이 깊어질수록

대응은 뒤로 밀리지 않고 점점 멀어진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착각이 생긴다.


맡겼으니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가 된다.


맡김이 늘어날수록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순간은 좁아진다.


그리고 그 순간이 희미해질수록

한 번의 판단이 가지는 무게는 커진다.


그래서 경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안쪽으로 밀려난다.


보이지 않게, 더 깊게.


이 연작은 여기에서 또 한 걸음 나아간다.


맡김은 필요하다.

그러나 맡김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


그 끝은 기술이 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정한다.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다시 손을 댈 것인가.


그 지점을 정하는 일.


그것이 기준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이것이다.


맡김은 편리함으로 시작되지만,

경계는 사람이 붙들 때 비로소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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