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그래험 벨의 판단

헬렌 켈러 교육 가능성을 처음 본 순간

알렉산더 그래험 벨의 판단 — 헬렌 켈러 교육 가능성을 처음 본 순간


1886년 워싱턴에서 이루어진 만남은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다. 이때 **알렉산더 그래험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은 어린 헬렌을 직접 만나 보고 그녀의 상태를 살핀다.


벨이 헬렌을 특별히 주의 깊게 관찰한 이유는 그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 **엘리자 벨(Eliza Grace Symonds Bell 1812–1897)**은 청각 장애인이었고, 그의 아내 메이블 허버드 벨(Mabel Gardiner Hubbard Bell 1857–1923) 역시 어린 시절 병으로 청력을 잃은 사람이었다. 이러한 가족 환경 속에서 벨은 오래전부터 청각 장애인의 언어 교육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헬렌 켈러는 자서전 The Story of My Life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나의 삶 이야기에서 이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He put a watch into my hand and I felt the vibration of it히 풋 어 워치 인투 마이 핸드 앤 아이 펠트 더 바이브레이션 오브 잇: 그는 내 손에 시계를 쥐여 주었고 나는 그 진동을 느꼈다


— Helen Keller, The Story of My Life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나의 삶 이야기, 1903.


벨은 어린 헬렌에게 여러 물건을 손에 쥐여 주며 반응을 관찰했다. 촉각을 통해 사물을 탐색하는 헬렌의 태도와 집중력을 보며 그는 이 아이가 단순히 감각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아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켈러 부모에게 중요한 조언을 한다. 헬렌과 같은 아이를 교육하려면 **퍼킨스 맹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와 연락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 학교는 이미 농맹 소녀 **로라 브리지먼(Laura Bridgman 1829–1889)**을 교육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벨의 조언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었다. 그는 퍼킨스 학교가 헬렌과 같은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 경험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켈러 부모는 이 조언을 따라 퍼킨스 맹학교에 편지를 보내게 된다.


당시 퍼킨스 맹학교 책임자는 **마이클 애너그노스(Michael Anagnos 1849–1906)**였다. 그는 켈러 부모의 편지를 받은 뒤 학교 출신 교사 가운데 한 사람을 켈러 가정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 교사가 **앤 설리번(Anne Sullivan 1866–1936)**이었다.


1887년 3월 3일 설리번이 앨라배마 터스컴비아(Tuscumbia) 켈러 가정에 도착한다. 헬렌 켈러는 이 날을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The most important day I remember in all my life is the one on which my teacher Anne Mansfield Sullivan came to me더 모스트 임포턴트 데이 아이 리멤버 인 올 마이 라이프 이즈 더 원 온 위치 마이 티처 앤 맨스필드 설리번 케임 투 미: 내 삶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날은 나의 스승 앤 설리번이 나에게 온 날이다


— Helen Keller, The Story of My Life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나의 삶 이야기, 1903.


헬렌 켈러의 교육이 시작된 과정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결정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판단과 연결이 이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알렉산더 그래험 벨의 판단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는 어린 헬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퍼킨스 맹학교라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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