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와 설리번―제Ⅵ편 언어의 자리

―손에서 시작된 말, 세계를 여는 이름

헬렌 켈러와 설리번 ― 교육이 성립되는 조건 ― 제Ⅵ편 언어의 자리 ―

손에서 시작된 말, 세계를 여는 이름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의 손은 이미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물을 만지고, 물의 흐름을 느끼고, 사람의 움직임을 더듬으며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흩어진 감각이었다.

닿아 있었으나, 서로 이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앤 설리번(Anne Sullivan, 1866–1936)은 그 손 위에 같은 동작을 반복해 남겼다.

흐르는 물을 만지게 하면서, 손바닥에 일정한 글자를 눌러 새겼다.

같은 순서, 같은 압력,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했다.

이 장면은 Helen Keller, The Story of My Life, Doubleday, Page & Company, English, 1903 및 Anne Sullivan, Annual Report of the Perkins Institution for the Blind, Perkins Institution, English, 1887에 근거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손에 남는 움직임과 피부에 닿는 감각은 서로 이어지지 않았다.

물은 물로 흘렀고, 손의 움직임은 그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반복은 끊기지 않았다.

흐르는 물 위에서 같은 동작이 다시 놓였고, 또 이어졌다.

어느 순간, 흩어져 있던 감각이 한 점으로 모였다.

손의 움직임과 물의 느낌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 순간,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그 이름은 소리로 들리지 않았고, 눈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손 안에서 느껴졌고, 몸으로 기억되었다.

이름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안에서 연결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세계는 달라졌다.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고, 다른 사물과 구분되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감각들이 자리를 잡았고, 서로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손은 더 이상 단순히 만지는 기관이 아니었다.

의미를 담는 자리였고, 세계를 여는 문이 되었다.


설리번은 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하나의 이름이 자리 잡자, 또 다른 이름을 이어 붙였다.

사물과 사물, 감각과 감각을 연결하며 같은 방식을 반복했다.

그 과정은 빠르지 않았고, 쉽게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이 언어는 입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소리가 없었고, 문장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말이었다.


손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그 말은 사물을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세계를 나누고 다시 묶으며 의미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름이 생기자 관계가 생겼고, 그 안에서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 순간부터 헬렌 켈러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상태는 그대로였으나, 세계는 더 이상 막혀 있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세계를 읽기 시작했다.


교육은 여기서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감각을 이어 하나의 의미로 묶는 일이었다.


그 시작은 한 번의 연결이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이 세계를 여는 문이 되었다.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도 다르지 않다.

말은 이미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이어 붙이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먼저다.

그 연결 위에서 세계는 다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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