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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Nov 04. 2021

50의 사랑(1) "1230병실에서 50대를 보다"

1230병실에서 50대의 인생을 보다

“돈이 없으믄 아프지라도 말아야 되는디, 아들아, 미안하데이, 미안하데이”

“아, 내가 알아서 한다카는데, 왜 그런 말을 해싸!”   

 

000대학병원 1230병실. 5명의 환자와 간병인이 함께 지내는 공간이다. 조용한 정적을 깨고 80대 노부부가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급성 신우염으로 입원했는데, 곁에서 간병하시는 할아버지는 화가 많으신 분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할머니에게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소리를 지르신다. 할아버지의 기차 화통 소리가 지나가자 핸드폰 너머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걱정마세요. 어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근데 누나는 연락이 없어요? 제가 전화해도 안 받더라고요.”    


아들의 말투는 불만이 섞인 목소리다. 병원비를 나눠서 내야 하는데 누나가 연락을 피하는 모양이다.     

83세 김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워 핸드폰 볼륨을 최대로 올려놓고 통화하신다. 바로 옆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 할아버지의 통화는 짜증 그 자체였다. ‘나는 늙으면 저렇게 에티켓 없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라며 내 귀를 막곤했다. 그런데 오늘 통화내용은 짜증보다 안스런 마음이 더 컸다. 이윽고 통화가 끝나자 김 할아버지의 신세 한탄이 시작됐다.    


“자식 넷 죽도록 일해서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는기라. 늙어서 자식 덕 좀 볼려나 했는데 한 놈도 제대로 된 놈이 없응께 다 부질없다 아이가. 할망구가 저런 말 했쌓게 억장이 무너진데이. 참 잘못 살았데이. 늘거마해서 이래 살쭐 우째 알았겠노.”

“아따, 저거또 힘든께 카지 내가 안아파야 되는디 내가 안아파야 되는디”     


김 할아버지 부부는 아들 둘, 딸 둘 4형제를 키웠다. 넷 다 어렵게 산다고 한다. 큰딸하고 큰아들만 연락되고 나머지 둘은 연락 끊고 산지 오래란다. 50이 되니 이런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건강하게 지내시니 얼마나 복이 많으신건가. 감사할 따름이다.     


은퇴 후 노후 파산이 되는 3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 부모님이 아파서 병원비로 파산하는 경우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이런 경우 부모님과 자식 모두 불행해진다. 둘째, 본인이나 배우자가 중병에 걸린 경우다. 이제 막 노후를 안정되게 살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안정적인 기반이 무너진다. 셋째, 자식이 속 썩이는 경우다. 만날 사업한답시고 부모돈을 가져다 쓰는 경우다. 부모입장에서는 자식이 뭐라도 해보겠다는데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조금씩 도와주다 보면 집팔고 땅팔고 보험해약까지 한다. 냄비속에 개구리가 삶아지는 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모양새다.     


50의 바다는 거친 풍랑이 정점에 이른다. 부모님을 삼켜버리고, 직장을 삼켜버리기 시작한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그 거친 충격파에 휩쓸려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일까? 30년 후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코로나19로 면회가 불가한 상황이지만 왠지 찾아오지 않는 아들녀석이 괘씸하다.

‘이녀석들아 아무리 면회가 안된다고 해도 병원 앞까지 와서 창문으로라도 얼굴을 보면 안되겠냐? 이 무심한 놈들아. 갑자기 서글퍼진다.’    


“두두두둥 두두두둥”

내 핸드폰 진동소리다. 화면에 아들녀석 얼굴이 뜬다.    

 

“어, 아들. 어쩐 일이냐?”

“몸은 좀 어떠세요. 면회가 안되니까 가지도 못하고 그러네요. 의사 선생님은 뭐래요?”

“어, 괜찮데. 2~3일만 쉬면서 주사맞고 하면 바로 퇴원할 수 있데. 걱정마라. 바쁠텐데 어서 일 봐라. 내 걱정은 하지말고.”    


김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경상도 억양에 힘을 잔뜩 싣고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말한다.


“단디 해라이. 내 짝 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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