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있어서 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재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팬데믹, 대형 화재, 도시 침수, 사회기반시설 마비 등 복합적 재난이 일상이 되어가는 지금, 재난을 단순히 '피해'나 '사고'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본질과 구조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정부와 국제사회가 재난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재난의 원인과 대처 방법론을 짚으며, 왜 재난 대응 실패가 반복되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재난에 있어서 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재난’은 이미 발생한 결과를 가리키는 말이며, 그 이면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재난을 결과로도, 원인으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입니다.
재난안전법 제3조에서는 재난을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자연재난에는 태풍, 홍수, 해일, 지진, 화산활동 등 자연현상과 관련된 것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법 조문은 재난을 그 발생 원인이 되는 자연현상의 목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구체적인 유형을 나열한 이유는 그에 따른 조직 편성, 예산 배분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재해’라는 용어도 여전히 법령에서 혼용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대책법』 등 다른 법률들과의 용어 정합성 부족은 우리나라 재난 관련 법체계가 구조적으로 정비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사회재난은 자연재난과 달리 유형을 명시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사고의 결과가 일정 규모 이상이면 사회재난으로 간주합니다.
여기에는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환경오염, 감염병, 미세먼지, 인공우주물체의 추락 등 다양한 사고가 포함됩니다.
이러한 규정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지만, 문제는 복합재난 상황에서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태풍으로 인한 도시침수로 교통체계가 마비되면 이는 자연재난일까요, 사회재난일까요? 법률상 명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제연합(UN)의 재난위험저감사무국(UNDRR)은 재난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재난이란, 영향을 받은 공동체나 사회가 가진 자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광범위한 인적·물적·경제적·환경적 손실로 인해 사회 기능이 중단된 상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재난의 원인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그것이 사회의 정상적 기능을 마비시킬 만큼의 피해를 준다면 재난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 법령이 나열식으로 재난의 유형을 규정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재난의 본질을 "불확실성, 상호작용성, 복잡성"으로 정의합니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다양한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며 확대되고, 그 전개와 수습도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현대 도시가 고도로 연결된 사회인 만큼, 하나의 사고가 연쇄적인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매뉴얼 중심의 대응으로는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UN은 2010년부터 "재난에 강한 도시 만들기 캠페인"을 통해 각국 정부와 도시의 복원력 향상을 강조해 왔습니다.
복원력이란, 용수철처럼 다시 일어서고, 오뚜기처럼 균형을 회복하는 사회의 능력을 뜻합니다.
UNDRR은 복원력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위험요인에 노출된 시스템이나 조직, 사회가 재난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빠르게 복원할 수 있는 능력."
여기서 핵심 개념은 위험요인(Hazard), 노출(Exposure), 그리고 **취약성(Vulnerability)**입니다.
재난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위험요인에 노출되고, 취약성이 해소되지 못했을 때 발생합니다.
2020년 7월 24일,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가 집중호우로 침수되면서 차량 7대가 잠기고 3명이 숨졌습니다.
사전에 차량 진입만 막았더라도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이 사건은 천재가 아닌 '인재'였습니다.
재난이 단지 자연의 분노 때문이 아니라, 관리기관의 무대응, 또는 부실대응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사례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재난에 있어서 자연적인 것은 없다는 말, 바로 이런 점에서 출발합니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재난위험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재난위험 = 위험요인 × 노출 × 취약성 ÷ 복원력
이 식은 위험요인이 아무리 크더라도, 노출을 줄이고, 취약성을 개선하고, 복원력을 키우면 재난은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에 폭탄이 떨어져도 피해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반면, 도시가 밀집된 공간에서 동일한 사건이 발생하면 재난이 되는 것입니다.
재난 복원력은 크게 여섯 가지 활동으로 구성됩니다:
예방 (Prevention) – 사고 자체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
경감 (Mitigation) – 피해를 줄이기 위한 구조적, 비구조적 조치
보호 (Protection) – 핵심 시설이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대비 (Preparedness) – 비상상황에 대비한 훈련과 계획 수립
대응 (Response) – 사고 발생 시 신속한 구조, 구호, 통신체계 운영
복구 (Recovery) – 일상으로의 회복과 재건
이 중에서도 ‘대비’와 ‘대응’은 단순히 제도와 매뉴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간 협업 체계와 유기적인 거버넌스가 요구됩니다.
한국은 재난대응조직도, 법체계도 있지만, 반복해서 대응에 실패해 왔습니다. 왜일까요?
중앙집권적 구조: 현장에 권한이 없고, 상급기관의 명령을 기다리는 구조
책임 분산 구조: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다”는 말처럼, 지휘권과 책임이 분리됨
형식적 훈련과 매뉴얼: 실상은 실전에서 무용지물
조직 간 협업 부재: 각 부처와 기관이 자기 역할만 수행, 통합지휘 부재
이러한 구조에서는 현장에서 빠른 판단과 통합된 대응이 어려워지고, 결국 피해가 증폭됩니다.
재난으로부터 우리 삶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시민입니다.
행정기관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선 다수 시민의 안전주권 의식이 필요합니다.
재난위험과 복원력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지역사회 재난 대비활동에 참여하고
재난 워치독(Watchdog)으로서 감시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비로소 시스템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재난에 있어서 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난은 대부분 예방 가능한 인재입니다. 제도, 조직, 행정, 문화가 바뀌면 재난의 피해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재난 대응 조직을 확대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깊이 있게 다루겠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법과 조직만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과 철학이 중요합니다.
이제, 재난을 두려워하기보다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함께 길러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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